브런치북 오후 3시 11화

안녕하세요, 송충이입니다.

by 오후세시


# 난 왜 이렇게 생산성에 집착할까


처음 '오후 3시'를 보면서 나와 같다고 느꼈을 때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 있다.


" 난 왜 이렇게 생산성에 집착할까 "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시간을 잘 쓰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보면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상담을 하면 내담자의 지지자원을 찾는 것은 상담자의 필수 과제이다. 내담자에게 자원이 될만한 성격이나 관계, 기능적 역할 등을 찾아 함께 이 지지자원을 발판 삼아 발전되도록 연습을 하곤 한다. 그렇게 내담자의 자원만 찾아다녔는데, 막상 내 자원은 등한시했던 것을 비로소 느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 꼬물꼬물 만드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작가가 되고 싶었고, 20대에는 캘리그래피에 빠져 나름 간판과 같은 제작 의뢰도 틈틈이 받았었다. 안정적이지 못하다 느끼는 진로의 갈림길 위에서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것 같다. 아니 관심이 없었던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등한시되기 마련이었으니까.




# 기질과 성격


기질과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심리검사가 있다. 임상심리사 김한우 선생님이 하시는 이 심리검사 특강을 들었을 때, 당시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누구든지 부모에게서 기질을 물려받는다. 그 기질이 환경에 의해 다듬어지고 변화되는 것이 성격이다. 그래서 기질은 고기나 야채와 같은 재료와 같고, 성격은 냉장고와 같아서 이 기질을 잘 관리해야 한다. 고기는 냉장이 잘 되는 칸에 넣어두어야 하고, 야채는 냉장이 다소 약한 칸에 넣어 관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따라서 사람은 기질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적응적으로 살 수 있도록 상담에서 도와주어야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의 기질 중 한 부분은 창조적 활동을 매우 아끼고 좋아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어내고, 원하는 심상을 표현해낼 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갈 때면 소품샵을 구경하는 것이 예쁜 카페를 가는 것보다 더 좋았다. 오일 파스텔로 그림을 그릴 때에도 세상 이런 화가가 없다(실력과는 상관없다 에헴).


KakaoTalk_20200406_115147884.jpg 제목은 동백꽃 필 무렵(당시 드라마에 빠졌던 것이 분명함), 엄마가 보더니 그리다 만 그림이란다. 쳇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물론 걱정도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내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 참 느낌이 새로웠다. 마음속에 풍선이 불어지는 것 마냥 마음이 부풀고 들뜨는 기분이 든다. 어렸을 적 보물 찾기를 했을 때 느낌이랄까. 보물 자체가 대단해서 즐겁다기보다, 찾는 이 과정이 재밌고 즐겁다고 해야 하나. 막상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나면 완성도는 떨어져도, 만드는 동안에 이미 에너지 충전이 다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다.




# 안녕하세요, 송충이입니다


어리석었다. 내가 태어난 모양대로 살았을 때 가장 행복한 것이 기질이라던데, 나는 내 기질을 소홀히 했었다. 글을 쓰면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자라야 하는구나 깊게 느꼈다. 사실 이러한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모든 여가활동이 그러하겠지만). 재료비도 들고, 공방에서 일일 클래스라도 할라치면 그 비용에 멈칫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송충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 큰 맘먹고 도자기 일일 수업을 신청했다.


KakaoTalk_20201024_145911341.jpg 내가 만들어본 그릇. 어떤 유약을 바르냐에 따라 색이 다르단다(너무 신기해).


손으로 흙을 만지면서 너무 재밌었다. 부드러운 흙을 손에 묻혀가며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기분 좋은 떨림을 안겨주었다.



KakaoTalk_20201024_145911341_02.jpg 버섯 아님. 틀에 맞게 흙을 틈 없이 밀착시키고 다듬어주는 작업 중이다.




도자기를 만들고 나서, 공방에서 사용했던 앞치마가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치마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내가 좋아하는 원단을 찾아 주문했다. 재봉틀도 없이 정말 무작정 주문한 것이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랬다고 손 바느질로 만들었다. 부드러운 면 감촉이 좋아, 어린아이처럼 무작정 집에서 하고 있다. 설거지나 요리를 하기에 부적합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좋다.



KakaoTalk_20201020_140319871_02.jpg 가까이 보면 서툰 손 바느질이 보인다. 중학교 때 기가 실습 과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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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스누피를 달았더니 꽤나 마음에 든다.





그리고 지금은 다가올 겨울에 할 목도리를 뜨고 있는 중이다. 목도리를 뜨기 전에는 남편과 내 스웨터를 떴었다. 목도리는 새로운 모양대로 영상을 참고해 뜨고 있는 중인데, 실과 바늘이 얇아 오래 걸린다.


KakaoTalk_20201024_142432089.jpg 앞치마의 특별출현...


내가 스스로 송충이라고 여기지 않고, 예전처럼 '이런 데 돈 쓰는 것은 아깝다'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나는 내 지지자원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어렸을 때 종종 물건을 잘 잃어버리곤 했는데 어떤 건 한참 뒤에 찾기도 하고, 어떤 건 영영 못 찾기도 했다. 나는 내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나에게 안 좋다는 걸 안다. 안정이 중요하고, 불안에 치여서 낯선 선택을 하기 어려운 지금, 더 이상 '내 것을 더 이상 잃어버리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나는 생산성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산적인 일을 할 때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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