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굴리듯이 04화

[어른 동화] 굴리듯이 4화

by 오후세시


두더지와 개미는 어느덧 뉘엿 뉘엿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들판을 침대 삼아 하늘을 이불 삼아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두더지 앞에 커다랗고 부드러운 갈색 털에 쌓여 있는 생명체가 나타났다. 두더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여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이리저리 탐색해보았다. 갈색 털로 뒤덮이고 아주 커다란 털북숭이의 앞면은 피부 겉가죽이 있어 마치 손이나 발과 같았다. 피부 가죽에는 아주 단단한 부위가 있었는데, 두더지가 가까이 가서 손 끝을 대보니 아주 딱딱했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야. 아파


소리에 놀란 두더지가 말했다.


- 뭐. 뭐야? 너 누구야?

- 나? 나는 너의 손이잖아


그제야 두더지는 들판에 누워서 잠이 들어있는 커다란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두더지가 개미처럼 작아진 것만 같았다. 너무나도 거대해진, 아니 다시 말하면 너무나도 작아진 채로 바라보니 자신인지 몰랐던 것이다.


- 내 손이었구나. 이렇게 단단했던 데가 있었던가?

- 그럼. 매일 열심히 땅을 파기 위해서 손에 굳은살이 박힌 것이지. 네가 하루도 쉬지 않고 땅을 팠잖아.

- 아 그랬구나. 맞아 난 매일 땅을 팠었지. 근데 그래서 굳은살이 생긴지는 몰랐네

- 몰랐을 수 있지. 근데 어떤 이유로 매일 땅을 판 거야?

- 음.. 그냥 밖에 누군가가 보이는 것도 싫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어


그러고 나서 1분 남짓 침묵이 이어졌다.


- 미안해. 아픈지 몰라줘서

- 알아줘서 고마워. 그 말이 듣고 싶었어.


그리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두더지는 밤새 자신의 손과 대화하는 꿈을 꾸고 나서,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손을 먼저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과 손을 맞대어 중얼거렸다.


- 고맙고 미안해!

- 뭐라고?


옆에서 잠이 덜 깬 개미가 물었다.


-뭐라고 한 거야?

-아 아니야 아무 말도.


두더지와 개미가 일어난 들판에는 어느새 철새 여럿이 모여있었다. 철새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개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두더지야, 쟤 네들은 철새들이야. 이곳저곳을 같이 다녀서 여기저기 소식을 잘 알지. 쟤네한테 가서 정리를 도와줄 이가 있는지 물어보는 게 어때


두더지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눈과 눈썹이 한껏 올라갔지만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붙일 자신이 없었다. 그러한 두더지를 보고 개미는 자신이 물어보고 오겠다며 철새들에게 향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는 듯하더니 개미가 돌아와 외쳤다.


- 있데! 정리를 도와줄 이가!





제가 좋아하는 심리치료 이론 중에서는 ‘마음 챙김’이라는 행동치료가 있습니다. 이 치료는 호흡과 명상을 기반으로 하여 이완과 수용을 주 목적으로 합니다. 그중 존 카밧진이 개발한 8주에 걸쳐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선 ‘바디 스캔’ 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내 몸을 스캔하듯 관찰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몸에게 말도 걸고, 자비로운 대화를 시도하지요.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많이 아팠구나”, “조금 더 신경 써줄게”, “괜찮아”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는 몸과의 대화는 나 자신에게 자비로운 태도를 갖게 해주는 데는 참 용이합니다.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이를 수용해주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수용을 받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기에, 두더지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만나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eyword
이전 03화[어른 동화] 굴리듯이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