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대화
두더지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피부로 느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불어올 때 깨달았다. ‘어디서 바람이 부는 거지’ 두더지의 눈앞에 보이는 크게 늘어진 느티나무의 이파리들이 일제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곧 바람이 두더지에게도 불어왔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람이 불어오겠구나 느꼈다. 그리고 조금 더 멀리 바라보니 나무들이 빽빽하게 이룬 산이 있었다. 두더지는 자신도 모르게 궁금했다.
- 저 산은 이런 나무들이 빼곡하게 줄을 지어서 만든 걸까?
개미는 두더지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두더지의 얼굴을 쳐다보다, 산을 바라보곤 말했다.
-음.. 그렇겠지?
그리고 둘은 자신들에게 불어오기 이전, 느티나무에게 불어오기 이전 일지 모르는 산 너머를 바라보았다. 산은 우리가 아는 모양의 둥근 산이었으나, 그 둥금을 빼곡하게 나무들이 채우고 있었다.
- 개미야 산을 자세히 보면, 나무들이 산을 만든 게 맞는 것 같아.
- 음 그런 것 같네. 그러면 산을 하나 만들려면 저 많은 나무들이 필요하단 얘기네?
- 그렇겠지?
그러나 두더지는 하나의 산을 만들기 위해 나무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생각했다.
-처음 나무가 생기고 난 뒤에 또 다른 나무가, 그 나무 뒤에 또 하나의 나무가 생기지 않았을까?
- 저렇게 나무들이 성실히 모여서 산을 만드는 거였구나
- 성실?
두더지는 나무들이 산을 솜털처럼 이루는 모양새가 고군분투가 아니라 개미가 이야기한 성실이 맞는 것 같았다.
- 오 성실하네! 차곡차곡. 하나씩 하나씩. 성실하다!
- 성실..
성실이라는 말을 듣는 개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개미는 성실이 싫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성실밖에 방법이 없는 듯이 미련하게 일을 하는 자신들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성실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난 성실이 싫어. 오늘 이렇게 집을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야. 사실 자주 그랬지. 너무 답답하잖아.
- 그럼 어떻게 하고 싶었.. 는데?
- 몰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러니까 이렇게 너랑 나온 거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개미의 진심에 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두더지는 당황했지만 잘 대답하려 애썼다. 두더지와의 짧은 대화는 개미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건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두더지에겐 그 걱정거리에 맞는 말을 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당황하는 두더지에게 개미가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 너는 그런 거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
아 아까 잘 정리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왜 정리가 그렇게 필요한 거야?
- 정리하지 않으면…
두더지는 잠깐이지만 지난 기억에 잠겼다. 오늘과 같이 대답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런 기억들이 두더지에게 상처로도 남고, 후회로도 남았지만 그 기억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물속 고무공처럼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래서 그 기억들을 한 상자에 모아 보관하기 시작했다. 두더지는 이것이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불편한 기억들과 감정들을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뜨려두기 위해 정리하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정리는 정리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 정리하지 않으면… 아마 우리 집은 그것들의 집이 될 거야.
어쩌면 나중에 그것들이 합쳐 큰 몸을 이뤄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어. 무서워.. 그래서 정리하는 거야.
- 그렇구나
그 순간 개미는 두더지의 두려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하지 않았다기보다 그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두더지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침묵이 아닌 침묵을 느꼈다. 개미가 자신의 무서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끄덕끄덕 거리고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썩 괜찮았다. 대답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개미가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어떠한 말도 자신의 말을 공감해줄 수없을 것 같아, 끄덕거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침묵도 썩 괜찮구나’
처음으로 동화를 써보는 거라 읽어줄- 좋아해 줄 사람이 있을지 두려움이 앞섰지만, 내가 나의 일을 좋아해 주는 것에 겁내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유 퀴즈에 나온 김영하 작가님의 말을 빌려 ‘절대로 나오지 않을 동화’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잡생각이 줄어들어 연습장에 끄적끄적 쓰게 됩니다. 동화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상담자로서 상담에서 ‘비유’를 참 좋아하고, 잘 쓰는 도구인데 상담에서 비유로 들었던 이야기들을 각색해서 적어보려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는 전에 느껴왔던 성실함에 대해 녹여내었는데, 그에 대한 브런치 글도 함께 공유해봅니다. 발로 그린 그림들이 그릴 때마다 스스로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형편없지만, 한 편마다 꼭 같이 첨부해서 내 마음을 스스로에게 약속 삼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잘하고 있다고요.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3clock/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