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굴리듯이 05화

[어른 동화] 굴리듯이 5화

by 오후세시


개미의 이야기를 듣고 간 곳에는 커다란 들판에 철새들이 모여 있었다. 철새들은 족히 한 동네 주민과도 같이 떼를 이루어 있었고, 제각기 자유롭게 있었다. 어떤 이는 물을 마시고, 어떤 이는 들판에 누워 휴식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꼭 모여 있는 마을 같았다. 개미가 그 안에 두더지를 데리고 들어가자, 두더지는 왠지 모르게 이방인이 되는 느낌을 받아 위축되었다.


- 개미: 정리를 잘해주는 동물을 알고 있다고?


개미가 말했다. 그러자 들판에 앉아 있던 한 철새가 일어나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오곤 대답을 건넸다.


- 철새: 아 아까 너구나. 그래, 정리를 잘해준다고 들었던 것 같아.

- 두더지: 어.. 어디서?


두더지가 입을 열자, 철새는 개미를 바라보다 두더지를 바라보곤 눈알을 하늘로 굴려가며 생각했다.


- 철새: 음 그게 우리가 다녀온 곳이 많아서, 정확하게 어디였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

- 개미: 뒤에 네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안 돼?

- 철새: 어어 잠깐만.


철새는 뒤에 있던 다른 철새 무리들에게 가서 뭐라고 대화하는 것 같았다.


- 철새: 어어 생각났어!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큰 바위 산을 지나왔는데, 그 산에는 큰 연못이 있어.

- 개미: 큰 연못?

- 철새: 응 우리는 항상 여기 오기 전에는 큰 바위 산에 들려 연못에 쉬다 오거든. 그 연못의 주인이 있는데 그 주인이 가르쳐줬어. 정리를 잘해주는 동물이 있다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 두더지: 아..


벌써부터 연못에 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가 한풀 꺾인 두더지였다. 하지만 일단 그 연못 주인을 만나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에, 서두르고 싶었다. 그런데 개미는 철새들과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 개미: 근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 철새: 우리는 잘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녀. 날씨가 추우면 따뜻한 곳으로, 더우면 서늘한 곳으로. 계절이 시간을 가르쳐주면, 그 시간에 맞게 움직이지. 우리가 가는 곳은 늘 비슷해.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는 것처럼 정해진 일 같아.

- 개미: 오 그렇구나..


두더지는 개미가 철새를 올려다보는 것이 키가 작아서이겠지만, 우러러보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두더지가 느낀 바는 정확했다. 개미는 철새들이 자유롭게 날아 어디든 이동하는 것이 경외스러웠다.


- 개미: 그런데 너희는 같이 다니는 거 불편하지 않아?

- 철새: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 혼자 다니는 게 오히려 상상이 안돼.

- 개미: 우리 무리들도 너희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나도 참고 같이 다닐 수 있는데, 얘네들은 맨날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만 반복해. 지겹게 말이지.

- 철새: 그렇지만 우리도 반복하는 걸. 무리 지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고, 그 생활이 불편하기보단 외롭지 않아서 좋아. 넌 혼자 나와서 외롭진 않아?

- 개미: 음..


개미는 두더지의 숙제를 같이 찾아주면서도, 찾고 나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이따금씩 있었다. 무리에서 지겹도록 반복하는 일을 때려치운 것은 좋았지만, 그 이후에 그럼 무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려웠다. 마치 철새들이 쉬는 텅 빈 들판처럼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던 개미는 철새를 바라보며 평소답지 않게 작고 느리게 말했다.


- 개미: 혹시 너희를 따라가 봐도 되니?


철새는 처음엔 예기치 못한 질문에 망설였지만 끝내 “그래 좋아”라고 대답했다. 그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대화로 흘러간 것이 당황스러워 두더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 개미: 미안해, 내가 같이 찾아주기로 했는데

- 두더지: 아냐- 괜찮아.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뭘.


두더지는 지난밤 꿈에서 자신의 손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났다. 무작정 혼자 나서는 일이 무서웠다면 애초에 집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개미와 헤어지는 것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을 위해 각자 찾아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미는 철새 무리를 따라가고, 두더지는 철새가 안내해준 대로 큰 바위 산으로 떠났다.






저는 지금의 프리랜서 생활에 만족하지만, 한 때는 매우 불안했습니다. 정규적으로 배치되지 않는 시간과 급여, 그에 맞게 어기적 어기적 돌아가는 일과는 여유롭기보다 낯설었으니까요. 상담을 배우고 싶어 안정적인 직장에서 나왔지만, 막상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 기분은 텅 빈 들판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채워야 할 것 같은데 채우지 못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불안한 나를 달래지 못해 숱한 나날들을 불행하다 여기며 보내왔지요. 경제적, 관계적, 상황적으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 같이 느껴졌고, 내가 무언갈 하지 않아서라고 여기며 더욱 조급해지고 강박에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우울에 골이 깊어질 때쯤, 주변의 도움으로 그 시간에 별 볼일 없어 보여도 나에게 의미 있는 일들로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하기도 하고, 상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논문을 준비하기도 하고, 배워보고 싶은 곳에 일일 클래스도 다니고, 낮잠도 자고, 식사의 장을 봐오고…

저는 오후 3시가 가장 괴로웠던 사람이었습니다. 집에 홀로 하는 일 없이 오후 3시를 맞으면, 아무 능률도 능력도 자신도 없는 나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후 3시 근방에는 무언가를 해야 덜 괴로울 것 같아 시작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하루가 그냥 평범한 이들의 하루처럼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저의 이름이 오후 세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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