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철새들을 따라나선 지 나흘 밤이 지났다. 날씨가 서늘해지고, 밤엔 그 서늘함이 이슬처럼 맺혀 한기 어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두르는 법 없이 철새들은 매번 v자를 그리며 어느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개미도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지금은 왜 쉬는 것인지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때마다 돌아오는 말은 같았다.
- 철새: 우리는 따뜻한 곳으로 가고 있어, 남쪽이지. 그리고 먼 여행을 떠나려면 주기적으로 쉬어주어야 해
개미는 철새들이 어떠한 곳을 탐험하는 것도 신비로운 곳을 가는 것도 아님이 슬슬 지겨워졌다. 철새들은 그러한 지루함을 느낄 새 없이 자신들이 늘 해왔던 루틴이라는 듯 떠나고 쉬고 떠나고 쉬고를 반복했다. 하늘을 위를 항해하면서도 낮거나 높은 고조의 변화가 없었다. 또한 v자를 그려 항해를 하는 동안에도 루틴은 반복되었다. 맨 앞에 선두를 달리던 철새는 시간이 지나면 뒤에 있는 철새와 위치를 바꾸어갔다. v자를 그려 이동을 하는 것 또한 모든 철새들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선두에 있는 철새와 잘 맞춰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다시 철새들이 추수할 것을 다 거둔 밭에서 쉬어가던 때 개미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 철새: 개미야 힘드니?
- 개미: 아니 힘들진 않아
- 철새: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표정이 아까보다 좋지 않은걸
- 개미: 이상한 생각이 들어.
- 철새: 무슨 생각?
- 개미: 너희랑 우리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
- 철새: 그렇지 너희처럼 우리도 우리의 영역에서 같은 걸 반복하지. 근데 너는 그 반복이 왜 싫었던 거야?
개미는 뉘엿뉘엿 저가는 해와 그 밑에 남은 곡식을 쪼아 먹는 철새들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확실하지 않은 여러 마음들이 한데 섞여있어서 원래 무슨 마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 개미: 이제는 진짜 모르겠어. 처음에는 같은 일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는 게 지루했고 재미없었고 또 바보 같았거든? 근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게 이제는 좀.. 잘 모르겠어.
- 철새: 우리는 너희와 같은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 정해진 계절, 정해진 시간에 반복해. 그리고 나는 그게 엄청난 힘이 있다고 생각해. 너 말처럼 재미없고 지루하고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가장 강력한 힘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그걸 어제도 지금도 내일도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좋은 식량도 얻고, 따뜻하고 좋은 곳을 찾기도 하지만 굶기도 하고, 좋은 곳을 잘 못 찾기도 하지. 그렇지만 계속하는 거야 우리가 할 일은 이거니까.
개미는 복잡하고 한데 뒤섞여있는 마음이 무언가 버튼에 작동한 것 마냥 갑자기 온기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자기가 그동안 한 일에 대해 뭉클함과 그것이 맞았다는 뿌듯함 그리고 그것을 오래도록 반복하고 있는 철새 무리들과 자신이 나온 무리들에 대한 경외함, 그 안에 몰라주었던 미안함 조금이었다.
- 개미: 철새야 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그동안 내가 생각한 건 사탕 포장지처럼 겉 껍데기만 보고 느낀 것 같아. 그 알맹이가 뭔지도 모르면서
철새는 개미가 자주 접하는 사탕을 자주 본 적이 없었기에 쌀알, 보리 따위의 겉껍질을 상상해가며 경청했다.
- 개미: 근데 그게 아니었어 지루하고 재미없고 바보 같은 게. 그 바보 같은 일을 왜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하고 있어서 재미없고 지루한 거였어. 나 돌아가 봐야겠어 내 친구들에게.
철새는 곡식의 껍데기 상상을 하다가 개미의 끝맺음까지 듣고 웃음을 보였다. "그래 우리가 가는 길에 내려줄게" 그리고 개미는 여태껏 자신이 나온 다른 개미들을 무리라 칭하다 처음으로 친구라고 부른지도 몰랐다. 개미는 그 이튿날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볕이 뜨거웠던 여름날에 떠나왔던 곳은 어느새 가을과 겨울 사이 황폐함과 메마름 사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개미들은 지난날 모아두었던 식량이 집집마다 포진을 이루었고, 그 안에서도 돌아가며 저장창고를 지키거나 당직을 돌아가며 섰다. 꼭 철새들의 루틴과 다르지 않았다. 돌아온 개미는 철새들과 추운 하늘과 들판을 날아다녔던 기억을 회상하며 따뜻하고 식량이 풍족하며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곳에 감사마저 느꼈다.
개미의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개미의 이야기 또한 성실함이 무기인 줄 몰랐던 저의 이야기입니다. 성실함과 근면과 같은 꾸준함은 힘이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한 방의 힘이 나의 위치에 고조를 달리 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곧 지금의 내 성실함을 부정하게 됐습니다.
이 끝엔 도대체 뭐가 있기에 내가 계속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이러한 생각에 괴롭고 지루하고 하고 있던 일마저도 다 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놓는다고 해도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오랜 생각과 글 끝에 성실함과 근면과 같은 꾸준함이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저의 생각을 정리해나간 글을 같이 첨부하며, 오늘 자신도 몰랐던 무기를 찾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https://brunch.co.kr/@3clock/21
https://brunch.co.kr/@3clock/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