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두더지는 오랫동안 밖을 나선 적이 없었다. 그만큼 옷장을 정리해야하는 일은 그에게 절실했다. 꼭 무슨 일이 있어서 가출하는 풋내 나는 아이처럼 정말 필요한 몇가지만 챙겨서 집을 나섰다. 두더지는 스스로 생각했다. 이것이 긴 여행이 아님을, 그래서 조금 돌아 다니다가 돌아오는 것 쯔음임을. 그 것이 자신의 생각인지 소망인지는 얽혀 있어 알수 없었다.
집을 나서자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눈이 먼다는 게 이런 건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가던 중 맨 살에 밟으면 꼭 후라이팬을 밟은 것과 같을 햇빛에 달궈진 땅이 눈에 들어왔다. 그늘 한점도 없어 오롯이 햇빛의 열기를 받고 달을 때로 달아진 땅을 개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뜨겁겠다’ 두더지는 이상하게 그 개미들에게 시선을 거둘수 없었다. 개미들은 차곡 차곡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이라고 하면, 길거리에 떨어진 먹이를 컨베이어 벨트화 하여 자신의 기지로 나르는 모양새였다. 그들은 표정에 짜증이 가득하지도, 그렇다고 기쁨이 가득하지도 않았다. 한참을 바라보던 두더지는 개미들이 성실한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반복하는 모양이 지켜보는 자신도 지루한데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이 들었다. 이내 누군가에게 궁금증이 들고 생각이 드는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뭘봐
두더지는 멀리서 혹은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다, 발 밑을 보니 개미였다. 무리에서 줄을 지어 일을 하던 수많은 개미 중 하나였다. 개미는 손을 가냘픈 자신의 허리에 지고 두더지를 올려다보며 한껏 치켜눈 눈으로 쪼아보듯 이야기했다.
- 뭘 보냐고! 일하는 거 처음보냐
- 아 미안.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 처음보는 것 같아서…
말 끝을 흐리는 두더지의 대답을 듣고 개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이야기를 계속해갔다.
- 그치? 너가봐도 그렇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아니 이 땡볕에 이걸 몇번을 반복하는지 몰라. 진짜 짜증나고 지루하고 답답해 죽겠는데, 덩치크고 더러운 두더지가 구경났는지 쳐다보잖아. 너도 그렇게 생각한거지. 우리가 한심하고, 요령없이 바보같이 일만 한다고!
말을 내뱉고 나서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두더지를 보며 이내 한심하게 생각한 것이 두더지의 생각인지, 자신의 생각인지 햇갈리는 개미였다.
- 아니야 그렇게 생각한적 없어. 난 그냥 이 길을 지나가는 것 뿐이야. 누굴 만나러
- 누굴?
- 아 옷장에 짐이 너무 많아서… 정리해줄 누군가 필요하거든. 정리를 잘해줄…
점점 말 끝을 잘 못맺는 두더지였다. 개미는 두더지의 발 위를 기어 올라가 말했다.
- 잘됐네. 거기까지 나도 좀 같이 가자. 여기서 좀 벗어나야겠어
두더지는 말도 없이 먼저 올라탄 개미에 대한 기분인지, 자신의 발 위에 올라간 촉감때문인지, 누군가 동행해야하는 것 때문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두근 두근하면서 심장이 왈랑왈랑대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데에 있어서 오히려 쾌락을 느끼는 것과 같았다.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을 뒤로 하고 개미와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개미는 두더지의 발 위에 올라탄 채 쉴새 없이 지난 날, 자신이 느껴왔던 불평들을 털어놓았다.
- 아니 한번은 쉬자는 이야기를 아무도 안하는거야. 워라벨이 중요한 세상에 왜그렇게 미련하게 그것만 반복하냐고 왜. 내가 보기엔 다들 바보야. 일을 그렇게 말고는 할줄 모르는 바보. 내가 지금 어딜가도 걔네랑 같이 일하는 것보단 나을걸.
두더지는 오리의 푸념을 받아줄 때 작동되는 자신의 반응들을 개미에게도 똑같이 보였다. 개미는 끝없이 쏟아내는 불평에 동조만 해주면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오리와는 대화할 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침묵도 생기고, 그게 이내 부담되었다고 회상했다. ‘오히려 편해’ 두더지는 속으로 대답으로 대화를 이어가야하는 부담감이 있는 오리보다, 기계처럼 작동하듯 동조만 하면되는 개미가 오히려 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편함이 익숙하게 느껴졌던 기억을 어렴풋 회상해보았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편안함, 그것은 아니었다. 처음 찻잎을 우릴 때 뭐가 뭔지 몰랐지만 나중엔 익숙해져 쉽게 차를 내릴 때에도 편안함을 느꼈다. 개미와의 대화가 그런 편함일까 생각해보았지만 다르다.
‘아 생각 났다’
한번은 두더지가 자신의 꼬리를 밟고 있는 코끼리에게 비켜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던 적이 있었다. 주변에 다른 동물들이 다 모여있었기에 이 말을 하는 것이 코끼리에게 상처는 아닐까, 코끼리도 복작복작하니 어쩔수 없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꼬리가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다람쥐가 “얘 코끼리야! 두더지 꼬리 밟았잖니” 라고 말해주었고 코끼리는 바로 발을 빼며 “아이고 나도 모르게, 미안” 사과하였다. 두더지는 그 때 자기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상황에 벗어날 수 있어서 안도감을 느꼈다. 그 때 느낀 편함과 비슷했다. 두더지는 어쩌면 이야기를 할수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못한게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나는 그런 말 못해’
개미의 불평을 배경삼아, 자신이 못하는 것을 발견한 스스로가 아주 진저리가 난다고 느꼈다. 축축한 물에 담궈져있는 것처럼 힘이 빠지고 한숨이 나와 이내 발걸음이 느려졌다. 느려진 발걸음을 본 개미가 두더지의 표정을 보더니 이야기했다.
- 쉬다 가자! 쉬다가! 너 지쳤구나. 내가 올라타서 그게 무거운 건 아니지? 저기서 쉬다 가자.
둘은 큰 느티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느티나무의 한들거리는 나뭇잎의 모양새가 가벼워보이기도 축 쳐진 자신과도 느끼는 두더지였다.
- 근데 옷장은 왜 정리하려고 하는데?
- 음 더이상 들어갈 때가 없어
- 그럼 더 큰 옷장을 사면 되잖아?
순간 ‘어, 그러네’ 생각이 든 두더지였다. 그리곤
-그럼 계속해서 옷장을 늘려야 하잖아
라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어 버렸다.
- 아 그래 정리가 낫겠네
자신의 이야기가 거절로 들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 두더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