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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세시 Nov 09. 2023

자존감에 대한 고찰_4

우리의 목표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버스 운전석에 앉아있다. 그리고 뒷 자석에는 승객 몇 몇이 타있다.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데 뒷 승객이 소리친다. 왼쪽으로 가라고. 놀란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으로 운전대를 틀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승객이 외친다. 당장 멈추라고. 운전석에 앉은 당신은 목표지가 있고 그리로 가야한다. 안그래도 왼쪽으로 틀어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오늘 저녁 당신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집에서 파티중이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띵동 벨이 울린다. 누구인지 보니 평소에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지인이다. 파티 소식을 알고 찾아온 지인은 매너도 없고, 당신과 스타일이 너무 안맞아 함께 하기 싫을 정도다. 하지만 집 안 손님들도 지인이 찾아온걸 보았고, 이 지인은 선물을 들고 “들어가도 되죠?” 라며 문을 어깨로 스리슬쩍 넘어 반쯤 들어오려 든다. 당신이 초대하지도 않은 불청객인데 말이다.




  위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너무나도 소름끼치게 싫은 상황이 아닐까. 그런데 더욱 소름끼치는 건 저 상황이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운전대를 잡은 나와 홈 파티를 연 나도 ‘나’지만,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는 승객도 나이고 보기도 싫은 지인도 ‘나’이다.


좋은 방향으로만 갈수있다면, 좋은 사람(상황들)로만 함께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때때로 바다 깊이 숨어있다,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서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괴물과 같은 나도 존재한다. 그런 내가 꿈틀거리면 몹시 화가 나고, 띠껍고, 질투나고, 한 없이 우울해진다.



그런 상황이 오면 너무나도 쉽게 운전대가 넘어가고, 파티의 주인도 뒤바뀐다. 내가 운전대를 잡는게 아니라 뒤에서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고, 내가 연 파티의 불청객으로 인해 “망쳐버린 파티”가 되고야 만다. 그리곤 그 하루가 망했어- 하고 넘어가고, 그 하루가 몇번이 반복되면 난 망했어- 가 되기에. 다시 운전대를 잡고 다시 파티를 만들지만 비슷한 일은 이따금 찾아오기 마련이다.




  난 존재한다. 내 존재로써.

운전대도 나의 것, 파티도 나의 것. 하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것.


중요한건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상황보다 그 상황 속에 내가 있다. 내가 동생에게 아직도 질투를 느끼고 화를 낸 상황에서 상황탓- 동생탓- 을 하기 보다, ’그 속에서 과하게 분노한 나‘가 존재한다. <분노한 나>가 버스 기사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소리치는 나라면, <분노 후 괴로운 나>는 운전대를 잡은 나이다. 즉 바른 방향은 알지만 적절치 못한 나때문에 갈등도 겪고, 자연스레 넘어갈 일도 어렵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분노한 나는 어릴 적부터 쓴 뿌리를 박고 자라왔지만 나의 존재(여러 모습중 하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버릴수만 있다면 열번도 더 버렸지, 어릴적부터 뿌리내온 심지가 보통 단단하니 말이다.


받아들인다. 지금 여기에서 저 바닷속 괴물이 꿈틀대어 감정이 쏟아지듯 출렁이고, 땀이나고 얼굴이 빨개지며 주변이 들어오지 않는 순간을 알아챈다면. 받아들인다. 아니- 그럴수 없어? 아니- 그럴수도 있는거다. 그게 나인걸. 그런 나도 존재하는 걸. 그 존재가 꿈틀거리며 이럴 때마다 존재한다고 움직이는데 어찌 모른 척하고 넘어갈까. 인정한다. 그게 나다.

아직도 동생에게 질투하고, 가족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이 나이에 말이 안되는 소리라 하겠지만, 적어도 걸음마 떼고 앵앵거리는 어린 아이에서 스스로 반성할줄 아는 학생즈음으로 키웠다 치자. 그게 나다.




인지행동치료라고 알려진 ACT(Accept Commitment Therapy)는 직역하면 [수용전념치료]라고 한다. 음 내가 좋아하는 이론이자 상담기법이라 공부도 특강도 책도 찾아보며 나에게 적용이 잘되었다. 서론에 소개한 상황 2가지 또한 액츠에서 흔하게 볼수있는 예문이다.


내가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려면 직선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뒷 승객때문에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해도 결국 광주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목표는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가느냐이다. 내가 초대한 파티에 불청객이 와서 파티가 전만큼 편하지 않더라도 어떡하나- 그 한 사람때문에 이 파티를 망칠수 없는걸. 우리의 목표는 완벽하게 파티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파티를 즐겨보는 것인걸.


액츠에서는 이러한 순간을 “알아차림”하고, “기꺼이 하기”(수용하기, 받아들이기) 라고 설명한다. 산 정상을 가려면 가기 싫은 길도 가야하는 것처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가기 싫은 길을 만든 것도 나요, 그 못난 나도 나인걸.


이론을 소개하며 글을 쓰려니 조금 길어졌다. 이만 마치고 다음 글에서 이어 내 수용 경험담을 나눠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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