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Nov 06. 2023

자존감에 대한 고찰_3

누구나 존재한다. 그 가정에서


지난번 글에서 내가 나아진 과정을 정리하려했으나 다시 가족이야기를 쓰게 된다. 가라앉아있던 지난 일들이 다시 떠올라 지난 글을 이어 어릴 적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리 가족은 주말가족 아니 한달 가족이었을지 모른다. 아빠는 타지에서 일을 했기에 그것도 운동감독이라 쉽게 자리를 비우지 못한채 지방을 다녔고, 엄마는 홀로 나와 동생을 키웠다. 내향적이고 표현치 못하는 성격에 아무 연고도 없는 아빠 고향에 올라와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랫집 할아버지가 우리가 뛰어다닌다며 올라와 꾸중내실 때마다, 사소한 일로 주변 이웃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가구를 혼자 옮기기위해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고군분투하는 엄마를 볼때마다 느꼈다. 뭔가 부족하다는 걸. 여기가 완전치 않다는 걸. 그리고 무언가 더 해야겠다고 느꼈다.


엄마의 친정 식구들은 날 너무나도 예뻐함과 동시에 엄마 말 잘듣고, 동생 잘봐야한다는 말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5살이나 어린 동생을 잘봐야한다는 것이, 무언가 지금 우리 가족이 완전치 못하다는 느낌에 무게가 실리는 순간이었다.


어린 동생을 케어해가면서 그 일로 사랑도 받으면 좋았을걸, 당시 나는 너무 부족했고 엄마에겐 벅찼나보다. 아무리 해도 내가 잘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동생을 더 엄격하게 다루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나에겐 제대로 된 훈육이 필요한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도 어렸고( 지금 내 나이정도? 정말 어렸구나), 도와줄 아빠나 친척도 없었던 데다가 표현치 못하는 참고 넘어갔다. 그러다 어느 하루 참았던 것이 펑 폭팔하는 패턴이었다. 물론 날 앉히고 교육도 하셨을거지만, 내 기억에 남는 엄마의 모습은 모두 폭팔 그 자체였다.


동생에게 못되게 구는 나에게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누굴 닮았길래 넌 그러냐는 말도 하고, 홧김에 동생 손을 잡고 자리를 떠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 때 돌아보면 내가 잘못한 일이 맞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 반성이 들었다. 군대에 있는 동생에게 편지로, 또 만나서 구두로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그저 동생 잘보라는 말에 꽂히고 내 욕심에 질투까지 얹어 미성숙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훈육을 하기엔 버거웠나보다. 게다가 소극적인 엄마 성격에 폭팔한 이후에도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해주거나, 왜 그랬는지 내 얘기를 들어준 기억이 없다.

같이 씻고 싶어하고 엄마가 내 손을 헐겁게가 아닌 꽉 잡아주길 바랬던 기억이, 자꾸만 결핍 속에서 날 삐뚤어뜨렸다.




삐뚤고 모자란 나는 헌신하는 가정의 구원자 역할로 살아남으려 했다. 아빠가 돈을 빌리면 빌려줬고, 동생이 대학동안 용돈을 받고 싶다하여 대주고, 엄마가 먹고 보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해주었다.


잘못됐다. 당시 내 존재와 욕구에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걸, 구원자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인정받았다. 잘못됐다. 가족 앞에서 난 질투도 많고 덜렁대며 감정의 고도가 넓으며 책임감이 높은 사람일 뿐 가족 누구도 구원해줄 깜냥이 안된다.


남편을 만나 못나고 삐뚠 결핍의 구멍을 메워갔으니 다행이지, 나는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도 쑤셔진 곳을 부여잡고 몇날 며칠을 앓아야하는 작은 존재였다.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이런 구멍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다시금 상기하고 나의 자존감에 대해 글로 정리해본다.


쏟아붓는 글을 쓰고 싶지도 굳이 가정사를 쓰고 싶지도 않았는데, 결국 이 글을 쓰게 욕구가 올라온다. 너무 딥하게 풀어간 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하고, 다음 글에선 이후 내가 어떻게 내 존재를 찾으려 노력중인지 정리해보겠다.

이전 02화 자존감에 대한 고찰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