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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Oct 09. 2022

후반전에 만회할 준비 됐습니까?

인생 하프타임, "위닝 멘탈리티"로 마인드셋

이번 퇴사를 끝으로 직장에 매인 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평생 직업을 갖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도적, 의도적으로 쉼을 선택한 것이며, (형식적이었을 수는 있겠으나) 회사에서 수차례 만류할 만큼 팀 운영에 기여하는 시점, 동료나 후배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올라왔을 때에 퇴사를 결정했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에서 표현된 대로, 더 이상 배움도 보람도 없는 정체기에 들어섰다는 자각과 함께 다른 활동에서 발견한 배움과 자극이 직장의 가치를 역전한 순간이기도 했다.

지쳐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덕분에 퇴사 후에도 흔들림 없이 하던 것을 계속해오고 있다. 다만, 퇴사 전과 조금 달라진 부분이라면 좀 더 여유롭게 몽상과 공상을 곁들여가며 읽고 쓰고 있다는 점, 하고 싶은 활동을 시간을 쪼개지 않고 충분히 몰입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점일 거다.

백수 신분으로 갈아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적응했고,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원한 휴식이었기에, 적어도 아직은 절대로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제 아무리 현재의 내가 마음에 들어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마음을 채웠던 맑고 쾌청한 날씨가 일순 흐리고 스산하게 변한다. 이도 저도 죽도 밥도 안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불안"이라는 단어가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이러한 순간은 외부의 자극, 특히 SNS 또는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엿볼 때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나답게 사는 삶"을 꿈꾸며 회사 밖으로 뛰쳐나온 이들이 부쩍 많아지면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퇴사 준비 및 퇴직 이후의 과정들(성장 또는 성공 스토리)을 공유하는 사람들 또한 증가하고 있다. 회사일과 병행하며 준비해둔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거나 작정하고 시드 머니를 모아 창업을 하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미리 은퇴 자금을 두둑이 마련해둔 덕에 진짜 놀고먹는 이들도 더러 눈에 띈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결과를 내고 노하우를 제공하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단시간에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 그들이 부럽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미 준비된 사람들이로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퇴사를 결심한 후 1년이 훨씬 지나도 여전히 답보 상태인 나와 자연스럽게 비교해버리고 만다. 다시 초라해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화면을 바로 닫아도 머릿속에는 잔상이 남는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시시껄렁한 영상을 보아도 밀린 집안일은 해도 잘난 남의 이야기는 쉬이 떨쳐내 지지 않는다. 세차게 흔들어 똑 떨어지면 좋으련만 진득하게 붙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무엇으로 이 허상들을 내쫓아야 할까를 고민한다. 결론은 내 이야기를 채워서 물리쳐야 함을 깨닫는다.


미래와 현재를 향하던 시선이 과거로 이동해야 하는 순간이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 특히 노력의 결실을 맺었거나 난관을 극복하고 성과를 냈던 경험들을 떠올려본다. 대학 입학, 취업 등 굵직한 서사는 물론 재롱잔치 수준의 발레 무대와 같은 소소한 이벤트까지 모조리 소환해본다.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사는 것은 위험하겠으나, 위축감과 패배감에 파묻혀 있을 때 만큼은 긍정적인 기억이 특효약이 될 수 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라는 말이 있다. 소위 잘잘이라는 개념으로 이기는 팀이 계속 이길 때의 마인드 셋을 의미한다. 강팀이 연승을 하거나 매년 강팀으로 남을 수 있는 비결로, 그 밑바탕에는 "나는 또는 우리 팀은 결국 이길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


2005년 5월 2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챔스 결승전에서 리버풀은 상대인 AC밀란에 전반에만 3골을 내준 상태였다.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지만, 하프타임이 시작되자 당시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즈는 풀 죽어 있는 선수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주문을 한다.


고개 숙이지 마라.
만약 우리가 몇몇 찬스를 만든다면
우린 만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는 거야.
할 수 있다고 믿어라. 우린 해낼 거다.
가서 영웅이 될 기회를 잡아라.


리버풀은 후반에만 3골을 몰아쳐 동점을 만든 후, 승부차기에서 더 많은 골을 넣음으로써 결국 우승 트로피인 빅이어를 손에 넣게 된다(이 경기를 본 후 나는 리버풀, 그리고 스티븐 제라드의 팬이 되었다).  


3대 0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후반전 스타디움에 들어설 때 선수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미 끝났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을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을까?

단번에 자신감이 생기진 않았겠지만 강호들을 물리치고 결승에 오를 만큼의 전력이었기에, 아직 후반 45분이 남은 상황에서 지레 겁먹고 패배자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자격이 충분했고, 하프타임에 전열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이는 위닝 멘탈리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인생 전반전에도 패색이 짙었던 순간들은 즐비했으며, 이번에 퇴사할 때 역시 승리자는 아니었다. (비록 마지막의 퍼포먼스는 고점이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20년간 직장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암울했고 미래는 암담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그 결과 4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이에 조금은 일찍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2막을 열거나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채, 스스로 Gap Year라 부르는 하프타임을 맞이했다.

기간 또한 명확히 설정해놓지는 못하였으나, 지금 이 시간을  후반전을 준비하는 데에 알뜰히 사용하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충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악바리의 삶을 살지는 않으려 한다.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압박하는 더 바보 같은 짓을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열심과 성실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못해 다 태워버리고는 이내 무기력에 허덕이는 실수는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남은 건 공허하게 먹어버린 나이와 저질 체력 뿐이었으니까.


대신 자연의 변화와 예술에 심취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면서, 작은 성취를 반복하며 균형 있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나의 현재를 들여다보며 몸과 마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면서, 좋았던 기억들을 레퍼런스 삼아 나의 장점과 욕망을 끄집어내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전력을 가다듬는 하프타임은 위닝 멘탈리티로 마인드셋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걱정은 되는데 은근히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 어렵겠지만 해볼 만하다는 생각, 만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면, 이를 희망이라 부르려 한다.


그리고 곧 가슴 떨리는 후반전이 시작될 것이다.

한줄 요약 : 자신감을 얻고 싶을 땐 과거의 좋은 기억을 꺼내보자. "위닝 멘탈리티"로 전열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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