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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Sep 28. 2023

집은 15평쯤 줄이면 될까?

다운 사이징 합의 - 이유는 서로 달랐으나

[남편] "아무래도 집을 줄여야 할 것 같아."

[나] "나도 바라던 바야."


[남편] "15평은 줄여야 할 텐데 짐이 다 들어가려나?"

[나] "일단 내 옷부터 줄이면 큰 드레스룸은 필요 없을 거야."


[남편] "소파도 버려?"

[나] "당연하지!"


다운 사이징을 결정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위치도 좋고, 상태도 깨끗한 데다 층고도 나무랄 데 없다. 게다가 집주인 부부는  간간이 사는데 불편함은 없냐고 물어오실 만큼 자상하고 세심하신 분들이다. 이렇게 두루두루 만족스러운 집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미 결연하다. 비록 다운 사이징의 이유는 서로 달랐으나.


남편의 시선


타 지역에 위치한 자가에 직접 거주하지 않고 임차인을 들이고 있다.


내 집에 살지 않겠다는 결심은 한집에 안정적으로 거주하지 못하는 리스크로 이어진다.


초창기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옮겨 다니는 생활이 번거롭고 귀찮은 데다 경제적 손실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선택이니 받아들여 버리자고 맘먹은 이후에는 차츰 익숙해졌다. 동네나 집을 구경하고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느껴졌다.


언젠가부터는 이왕 이사 가는 거 좀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타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상 넓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집들을 물색하다 보면 역시 넓은 집에 마음이 끌렸다. 넓으면 넓을수록 수납할 공간도 많고 쾌적해 보였다. 배포도 커져서 전세자금 이자가 몇 십만 원 늘어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2022년 여름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전세가 마저 고공행진을 하던 시기였다. 새로 계약한 임차인은 그 꼭짓점에 들어왔다. 그 돈은 고스란히 현재 살고 있는 집 전세금으로 들어갔고, 지금 내 등바닥 아래에 깔려있다.


그때를 정점으로 전세가는 하염없이 내려갔다. 현 거주지 역시 역전세 가능성이 있으니 여기에서 빠지는 돈을 저기로 메꾸면 될 법도 하지만 이곳은 어째 전세 하락폭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자가 쪽은 역전세를 맞는 반면, 거주지 쪽은 부동일 경우 낙동강 오리알 신세는 우리 몫이다.


집을 줄여서라도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나의 시선


지금 사는 집에 끌린 건 순전히 수납공간 때문이었다. 드레스룸은 지금껏 살았던 어느 곳보다 넓었고 주방 수납장도 충분했으며 창고 역할을 하는 팬트리도 잘 짜여 있었다.


넓어진 드레스룸 덕에 웬만한 옷은 다 들어갔다. 비록 옷걸이 하나당 옷을 3개씩 걸어 놓는 경우도 있었지만 적어도 바닥에 쌓아둘 일은 없었기에 발 디딜 틈은 있었다. 싱크대 수납장에 주방 용품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건 물건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주었다. 덕분에 상부장 꼭대기까지 물건을 꼭꼭 매워 두었다. 팬트리 역시 모든 짐을 다 수용해 주었다.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 따져볼 필요도 없이, 천장에 닿을 데까지 쌓아둘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닥을 청소하는 데만도 이전 집에 비해 시간이 두 배는 더 드는 것 같았다. 욕실도 휑하니 넓기만 해서 바닥과 벽면 타일을 닦는 데 더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기본적인 청소가 힘들어지자 정리정돈에도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물건을 어딘가에 올려두는 습관이 굳어져 버렸고, 수납하거나 비워내지 않으니 그 물건의 수 또한 많아졌다. 싱크대 위에는 설거지 후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텀블러와 그릇들이 올라와 있었고, 재활용 수거함으로 가야 할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가 나뒹굴었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빵, 과자 봉지가 방치되는 것은 기본이고, 손톱깎이 케이스, 체온계, 약봉지가 몇 달 동안 그대로 올려져 있기도 했다. 최소한 식사할 때는 치워야 했지만, 한쪽으로 밀어둔 채 밥을 먹어도 크게 문제는 없는 듯했다. 방에 있는 화장대나 수납장 위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바로 제자리를 찾아 수납하고 필요 없는 건 수시로 버리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해도, 넓은 공간을 일일이 다니면서 치우다 보면 금세 방전되었다. 게다가 이미 수납공간은 물건들로 포화 상태였다. 더군다나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뭐라도 쑤셔 넣기에 바빴던 모양인지, 서로 관련도 없는 물건들이 한 공간에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납이 곧 정리정돈이라 생각했는데 완전한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더욱 마음을 힘들게 하는 건, "치워야 한다"라는 의무감이었다. "치워야 하는" 집에서는 마음 편히 휴식하기가 힘들었다. 침대에 누워도 물건이 올려져 있는 화장대가 눈에 들어와 정신이 산만해졌고, 식탁에 앉아 차분하게 차를 한잔 마시려 해도 올려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거슬려서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가 없었다. 집은 곧 나 자신이라던데. 이 집에서는 도무지 평화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전쟁에 가까웠다. 나는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옷을 고르다 회사에 지각할 뻔한 그날 이후, 옷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뒤집으면 지레 지쳐버릴까봐 에너지 레벨에 맞게 천천히 지속해갔다. 조금씩 드레스룸과 옷장에 공간이 생기자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아름답게 꾸며지진 않았어도 여백 자체가 질서를 만들어주었다. 그 질서 사이사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이거구나.'


집이 커진다고 해서 여백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질러져도 티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물건을 채우고, 치우지 않게 되면서 질서를 잃어버린다. 물건을 착착 야무지게 수납하는 것만이 질서는 아니다. 이 방법은 아이디어를 짜느라 애써야 하고, 수납 바구니를 더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무질서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정리 이후의 관리도 필요하다. 바지런한 성향이 필수적이다. 반면, 비워냄으로써 물건 수 자체를 줄이는 방법은 특별한 아이디어가 필요 없으며 손이 야무지지 않아도 된다. 비움 이후에는 관리 대상이 줄어들기에 게을러도 된다.


물건을 비우면 큰 드레스룸, 넓은 팬트리, 수납공간이 많은 싱크대는 필요 없게 된다. 이는 넓은 집 또한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평수가 줄어들면 청소도 간단할 것이고, 남는 에너지는 생활의 흔적들을 그때그때 정리 정돈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옷 비우기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 물건 비우기에도 자신감이 생긴다. 대다수는 애초에 쓸모가 없었거나 수명이 다한 쓰레기다. 짐들을 거두어 내면 내 마음도 더 가벼워질 것 같다. 작은 집이야 말로 가벼운 삶의 상징 아닐까? 물건으로부터의 자유이자 해방인 것이다. 물건에 공간을 잠식당해 버린 큰 집이 싫어졌다.


공통의 시선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예전 집에 비해 관리비가 5~10만 원은 더 나오고 있다. 이사 올 당시 공인중개사 사장님은 그만큼 열심히 살고 많이 벌면 된다며 긍정적으로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 집에 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넓은 집은 우리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걸 직접 체험을 통해 여실히 깨달은 참이다. 이번에는 사이즈를 한두 단계만 줄여 보고, 괜찮다 싶으면 계속해서 더 줄여나갈 생각이다.


집값이나 관리비를 감당하려고 더 죽기 살기로 일하고 싶지는 않다. 힘들게 벌어서 등바닥에 깔아 두는 삶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솔직히 아까워 죽겠다. 나아가 자산 가치를 더 늘리기 위해 돈벌이에 인생을 바치고 애쓰기보다는 딱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면서 소박하게 사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물론 극단적 절약이나 미니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 중에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영역은 "식"이기에 여기에 투자하는 돈을 당장 줄이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의와 주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이 쪽의 비중을 낮추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통된 생각이 하나 더 있다.


줄여야 할 물건 중의 절대다수는 내 옷이었다는 것. 남편은 평생 못할 것 같았던 옷 정리를 실천한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다.


* 좌충우돌 실패 투성이의 옷장 비움, 그리고 초보 미니멀리스트로의 성장기를 다룬 매거진입니다. 관련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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