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이제 아무개나 줄래

대신, 나를 사랑해 볼까 해

by 소소라미

회사 졸업을 준비하면서 문득문득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유쾌한 마무리를 하겠다며 허세나 부리고 있지만, 혼자서 웅크리는 시간이 없다는 거짓말은 못하겠다. 뭔가 우울함은 아닌 것 같고 울컥함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19년이나 직장 생활을 했으니 무 자르듯 뚝뚝 잘라내서 훌훌 털어버리는 건 힘겨운가 보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는 이 세상의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라는 이누야샤 가영이의 퇴사 짤을 흉내 낼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도 그거 한번 해보고 싶은데.


제일 마음이 아린 건 "난 성공하고 싶었던 걸까? 예전에 이렇게 결정했다면 지금보다는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였다. 성공의 기준을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희미해짐을 선택한 걸 보면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건 확실한 것 같다. TV나 동영상을 통해 직장에서 잘 나가는 일반인을 볼 때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불굴의 의지로 이겨냈습니다"

"최연소 팀장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여성(혹은 남성?) 임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스토리들은 아직 불편했다. 미련이 남았나.


청소년기에는 적성 검사를 통해 성향에 맞는 직업을 추천받곤 했다. 외교관이나 변호사가 나올 때도 있었고 가끔 교사도 있었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적성 검사에서 추천해 준 직업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좋은 평판을 가진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어학 시험을 보고, 수십 통의 원서를 냈다. 원서를 낸 회사에 맞춰 지필평가를 준비하기도 했다. 20대는 그냥 매뉴얼대로 살았다.


성공의 척도는 좋은 회사 취업 혹은 고시 패스였고 큰 의문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그 기준이라는 것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기성세대 문화일 뿐, 삶의 형태는 다양하니 성공 기준도 저마다 다를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20대에는 그게 맞다고 믿었다.


30대 들어서면서 매뉴얼을 손에서 놓았다. 가족에 더 큰 가치를 두면서 궤도를 이탈한 것인데 딱히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들은 승진 또는 이직을 통해 성공의 길을 닦아야 하는 시기라고 할 때 나는 경력을 새로 시작했다. 경력이 틀어져도 육아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편하게 일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다 보면 또 길이 보이겠지 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장밋빛은 없었고, 이후 잃어버린 10년이 되었다. 수많은 후회와 원망을 반복하다 내린 결론은 지나온 과거의 결과물이 현재의 나라는 점이었다. 잃어버린 10년 때문에 그리고 덕분에 직장 생활을 조기 졸업하기로 결심했다.


잃어버린 10년 때문이라는 건, 계속 매뉴얼대로 살았다면 잘 나가는 프로직장러의 삶을 동경하고 더 욕심을 내서 소위 말하는 성공이나 출세에 더 다가갔을 수도 있다는 가정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공 욕심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그건 대부분 가족이다. 당시 나는 가족이 우선이었기에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기업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후 새로운 직장에서는 안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다 노력 없던 시절을 들켜버린 듯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 자리가 없어질 위기가 왔고, 시간이 없었다. 뒤늦게 미친 듯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과속해버렸다. 팀에서 깍두기였던 것도 4명의 상사에게 휘둘린 것도 어찌 보면 내가 변변한 능력이 없고 애매해서 그랬던 건가 싶기도 하다. 베테랑이 되지 못한 채, 나이 먹은 아마추어로 남았다.


다만 잃어버린 10년 덕분이라고 하는 건 조금 빨리 좌절을 겪고 내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거다. 50살 넘어까지 매뉴얼대로 회사에 올인하고 열심히 살았어도 그때 가서 더 버티거나 혹은 그만 두거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생이었다면, 지금보다 더 허무하고 두려웠을 것 같다. 난 이미 직장인으로서 한계를 느꼈고, 40살 남짓에 회사 인생무상을 깨달았으니 미래의 10년을 번 셈이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건 20대에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앞으로라도 나 다운 삶을 잘 준비해서 50대가 되었을 때 40대의 나에게 그렇게 살아줘서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다짐해본다. 시간은 많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성공을 위해 애쓰지 않기로 했다. 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그중 26년은 일만 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다. 이미 절반의 대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거나 의식적인 노력 없이 보냈으니, 남은 절반 그니까 약 13년 정도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만 쫓다가 늙는 인생은 아찔하다. 그러니 성공은 아무개나 줘야겠다. 그냥 나 자체로 가치 있게 존재한다면 그걸로 될 것 같다.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는 대신, 정신 차리고 나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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