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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과 연애하면 불편한 점 3가지

쌈마이웨이 시절

by 소소라미

초등학교 동창놈과 가슴 콩닥거리는 썸도 아닌, 낭만스런 첫사랑의 재회는 더더욱 아닌, 몇 달 동안의 미적지근한 쌈에 가까운 밀당을 거듭한 끝에 커플이 되었다. (쌈은 나 자신과의 쌈이었고, 밀당 또한 내 마음에 대한 밀당에 가까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은 그 시작이 어찌 되었든 간에 행복한 일이다. 맞다. 분명 행복했다. 다만, 우리가 친구로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 이상(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연락이 끊겼지만)인 만큼 마냥 달콤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험난한 과정이라고 부풀려 말할 것까지는 없다 해도, 곳곳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속앓이를 하고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다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싸우지 않고 연애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 그 시절 우리 다툼의 대부분은 동창이라는 출신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조금은 남다르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1.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귀기로 한지 3일 만에 커플링을 끼고 공식 연인이 되었지만, 하룻밤 지나고 나니 우리는 다시 사랑과 우정 사이에 서 있었다. 다시 만날 땐 또 30cm 떨어져 걸었고, 술을 한잔하고 나서야 손을 잡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 만날 때마다 술을 먹었던 것일지도.


다른 연인들처럼 매일 연락해서 잘 잤는지, 밥은 맛있게 먹었는지, 뭐 하는지 등을 묻는 것이 당연한데도, 나는 왠지 낯간지럽게 느껴져서 "으응... 이따 전화할게"라는 애매한 대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은 적도 있다.


특히 낯설었던 건 그가 아침에 다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받는 상황이었는데 너무 남자로 느껴져서 당황스러웠다.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면서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낮게 깔린 목소리. 자꾸만 다시 듣고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걸고 싶은 내가 변태같이 느껴졌다. 남자로 봐야 되는 게 맞는데, 그 코찔찔이를 남자로 보는 나 자신이 징그럽기도 한 이중적인 감정이었다.


당시 그의 심경 변화는 물어본 적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그는 둘이 있을 땐 세상 소중하게 아껴주다가도 친구들과 있을 땐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직 대학생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술 한잔 혹은 당구 한게임 치고 있다며 갑자기 약속 장소를 본인 학교 앞으로 변경하곤 했다. 달콤한 데이트를 꿈꿨던 나는 졸지에 그들의 모임에 합류하는 사람이 되었고, 남자 친구 옆자리를 양보받긴 했어도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 중 한 명으로 대하는 그의 태도에 실망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린 선을 넘어 버린 현실이 낯설었던 것인지 한동안은 이쪽과 저쪽을 왔다 갔다 했다. 완전히 넘어 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 동창 친구들과 멀어졌다.


동창 모임에는 우리가 커플이 된 사실을 당분간 숨기기로 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단 서로가 어색했는데 굳이 공개해서 모두를 어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속내에는 사귀고 알아가는 단계에서 어설프게 오픈했다가 혹시라도 얼마 못 가 헤어졌을 때의 민망함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계산도 있었다. 지금 그대로의 동창회로 남길 원했기에 우리로 인해 캐미가 흐트러지는 것도 꺼려졌다.


사귄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무렵 그가 모임이 있던 날 우리 사이를 공개해 버렸다. 사실 그즈음에 이제는 말해도 되지 않겠냐며 어느 정도 합을 맞춘 상태였다.


그날 나는 조금 늦게 참석했는데, 친구들은 우리가 커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내가 오기 직전까지도 분명 다른 여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아니 반전을 품고 있었다 한다. (이런 바보 놈들)


그도 그럴 것이 친구인 시절에도 그와 나는 티가 나게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이미 주도하는 그룹의 일원이었고, 어린 시절에 비해 내향적으로 변해버린 나는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의 경계에 있었다.


게다가 우리끼리 상상 커플 만들기에 여념 없던 시절, 그는 큰 키 때문인지 키가 큰 여자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어쨌든 누군가의 상상이나마 우리가 엮인 적도, 심상치 않다고 느끼게 한 적도 없었으니 커플이 된 것은 그야말로 쇼킹한 뉴스였으리라.


우리 사이는 이미 선을 훨씬 넘어 자연스러운 연인이 되었는데, 친구들은 그제야 커플이 된 우리를 낯설어했다. 예전처럼 투닥거리다가도 순간 아차차 하는 표정을 짓거나, 그에게 술을 먹이다가 내 눈치를 보고는 자제하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진지해지면서, 아무리 동창생이라도 이성 친구와 단둘이 연락해서 만나는 건 경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뭐가 문제냐며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친구들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내 남사친은 없어졌고, 그의 여사친들도 멀어졌다. 모두가 동창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친구들인데 우리가 커플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끈이 여러 갈래로 갈라진 것 같아 아쉬웠다. 우리가 모임의 캐미를 망친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친구들도 우리에게 적응하느라 얼마나 노력해 주었는지를. 그리고 모든 것이 우리를 배려하려고 했던 것임을 말이다. 그러니 그저 고맙다.



3. 가끔은 쇼윈도 커플 연기를 해야 했다.


그 무렵 동창회 모임은 거의 매 주말 강남역에 모일 만큼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싸워서 둘 사이에 냉기가 흐르는 날엔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참석하지 않으면 친구들이 그 기류를 눈치챌 수 있고, 둘 다 안 나가면 배신하고 데이트나 한다는 오해를 받고 욕먹을 것이 뻔했기에 일단 나갔다.


"티 내지 말고 잘해라."


우린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서로에게 연기를 주문했고, 실제로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배우들 중에도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가 호감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던데, 우리 역시 모임에서 사이좋은 커플 연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녹아 버리곤 했다.


이때 갈고닦은 연기력은 결혼 이후까지 이어져, 양가 어른께 우리 사이에 대한 걱정을 끼치지 않는 스킬로 발전하기도 했다. 어쩌다 싸운 명절날 아침,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서로에게 연기를 주문한다.


"티 내지 말고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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