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언니의 한마디. 달달한 신혼 생활 이야기에 여념이 없던 분위기가 일순 차가워졌다. 당시 나를 포함한 결혼 1~2년 차의 햇병아리 새댁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7년 차쯤 된 선배는 "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며,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가끔 TV에 나와 전문가의 솔루션을 구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을 무렵, 나와 남편은 등을 돌리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남편은 그 또래의 가장들처럼 한창 회사에 충성을 다할 나이였다. 집안일보다 회사 일이 우선이었고, 아이가 아픈 것보다 회식이 중요했으며, 나보다 직장 동료들을 먼저 챙겼다.
나는 아이들이 더 어릴 때 공기업을 그만두고 작은 스타트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지방 이전이 확정된 공기업에 계속 다니는 건 우리 4 식구가 온전히 함께할 수 없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직한 회사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에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고, 덕분에 에너지를 양분하여 회사와 집안일을 두루 돌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동시에 아프거나, 업무량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나 또한 후달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 생활이 중요하다는 핑계로 집안 일에는 아예 신경을 꺼버린 듯한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진지한 대화로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고, 남편 역시 노력하겠노라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풀린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우리 사이가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삶의 가치관, 돈에 대한 태도, 상대의 원가족에 대한 불만, 육아 문제, 가사 분담, 심지어는 응원하는 야구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시선은 이미 엇갈리다 못해 엉켜있었다. 하나를 풀면 다음 스테이지에 더 어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서로를 바라본 들 풀어내지 못하니 돌아누워 외면하는 편을 선택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의 바닥까지 파내려 가 그 응어리가 가루가 될 때까지 비벼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등에 대고 대화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핸드폰 주소록에 남편의 이름을 'wall'이라 저장했다.
서로를 향해 빛나던 눈에는 별 대신 칼이 박혔고,
마음에는 봄빛 대신 겨울바람이 들어 앉았다.
닮은 구석이 많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많이 달랐다. 친구 같은 부부, 동창생의 낭만 따위는 현실이라는 파도에 삼켜져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아무리 수 십 년간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결혼 생활에 낭만 따위는 없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10년 가까이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마셔 보기로 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다만 집이나 동네에서 자리를 마련하기보다는 추억이 어린 곳에서 만나고 싶어졌다.
그때의 향기를 되찾을 수 있다면 우리도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친정 엄마에게는 철없는 딸이 되기로 했다. 남편이랑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적당히 둘러댔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을 맡기고 우리가 자주 다녔던 번화가에서 만났다.
예전처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기다리고,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했다. "네가 이랬는데", "너는 이랬어" 조금씩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옛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추억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오늘의 기억이 또 옛 기억이 되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꺾이고 휘어진 마음 모양을 펴서 기어이 평평하게 만들고, 날이 서다 못해 뾰족해진 마음 끝을 갈고 갈아 기어이 둥글게 만들었다.
등을 돌리지 않고 잠드는 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 우리는 부딪치고 싸울 때마다 등을 돌리지 않고 벽을 부수는 쪽을 선택했다. 때로는 공방전이 치열하여 생채기가 생겼지만 바로 치료하면 금방 낫는다는 걸 깨달았다. 흉터가 남지 않는 골든 타임을 알게 된 것이다.
한참 더 세월이 흐른 후, 남편은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사이가 안 좋았을 때로 돌아간다 해도 이제는 외면하거나 못 되게 말하지 않을 것 같아. 그때의 나는 방법을 모르는 바보 멍청이였나 봐."
잊을 만하면 마음 한켠에 다시 돋아나곤 했던 응어리가 사르르 녹았다. 가루가 될 때까지 박박 문지르고 비벼대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녹이는 쪽이 훨씬 쉽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