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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위로할게 내가 더 어른이니까

한 뼘 더 자란 남편

by 소소라미

나의 아빠와 나


2023년 5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10분이었다. 푹 잔 것 같았는데 고작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언니였다.


그 순간 나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곧 일어날 일을 직감했다. 오지 말았으면 했던 순간은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그것은 1분 1초라도 빨리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멍한 눈으로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시간이 좀 더디 가려나, 아니 아예 멈춰버렸으면.

그때 남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가 잠든 사이 형부한테 전화를 받은 터였다.


남편은 그렁그렁한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날 안아주며 살포시 토닥인다.


[남편] "괜찮아, 괜찮아. 자, 얼른 준비하자. 아버님이 기다리실 거야."


병원에 도착하니 아빠는 비록 스스로 숨조차 쉬지 못했으나 생의 가녀린 끈을 부여잡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눈물범벅이 되어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는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연신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가 다시 일어나 몸을 배배 꼬기도 하고 뒤돌아 의자 등받이를 잡고 오열하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엄마를 안아주어야 했다.


남편의 아빠와 나


시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7년간 병상에 누워 계셨고 내가 결혼하기 한참 전부터 말을 못 하셨다. 스스로 제대로 고개를 가누지도 밥을 드시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결혼으로 당신의 며느리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함께 대화하거나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32살에 상주가 된 남편은 슬픔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연하게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며 제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문상객을 맞을 때도 예의 바르고 정중했으며, 한분 한분 세심하게 챙겼다.


다만 내 경우는 분위기와 사람들이 모두 낯선 데다 시아버지 상이라 연락을 거의 취하지 않은 탓에 찾아온 손님도 별로 없었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남편에게 "들어가서 쉬어도 되냐"라고 물었다.

남편은 "그래도 며느리가 하나뿐인데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내심 서운했다.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지 않은 불교식 장례에도 묵묵히 다 따라주었는데 애쓴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도 섭섭했다.


결국 장례식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씩씩 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의 아빠와 남편


아빠 장례를 마친 날, 언니가 전해준 이야기.


[언니] "너 그거 알아? 장례식장에서 O서방(남편)이 첫날 새벽에 빈소 지킨 거."

[나] "응?"


[언니] "내가 잠깐 물 마시려고 깼는데, 빈소에서 소리가 나길래 슬쩍 보니까 아빠 사진 보면서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고 있더라고. 중간에 향도 다시 피우고 꽃도 놔드리면서. 코도 훌쩍이는 것 같았어."



며칠 뒤,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쾌청했다. 이 좋은 계절을 더 만끽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아빠가 못내 안타까웠다.


[나] "난 마음의 준비를 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자꾸만 아빠가 생각나."


[남편] "맞아. 그럴 거야. 다만 오늘보다는 내일 눈물이 조금 줄어들고, 모레는 조금 더 줄어들고 그러면서 괜찮아지더라. 그러다 갑자기 울컥하는 날이 오고. 나는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그래."


[나] "아, 그렇구나."


[남편] "장례식 장에서는 장모님 위로하느라 실컷 울지도 못했지? 나한테는 슬프면 슬프다고 생각나면 생각난다고 언제든 말해. 언제든 위로해 줄 테니까."


[나] "왜 그렇게 잘 알아?"


[남편] "내가 먼저 겪었으니까, 내가 더 어른이잖아."


(너는 어느새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어른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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