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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Dec 18. 2021

회사에 남기로 했어도, 숨 쉬는 걸 잊어선 안 돼

몸과 마음의 균형 찾아가기

지난해 11월, 해외 사업부와의 회의 시간에 기이한 경험을 했다.


주간 정기 분석 자료를 현지어로 발표할 때였다. 원래 유창한 외국어 실력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발음이 꼬이기 시작했고 평소에 익숙하게 사용하던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화상 회의였지만 마스크를 쓴 탓인지, 화면 저편에서 나를 응시하는 시선들이 더 따갑게 느껴졌다. 그들의 손실에 대한 보고 자리였기에 그들의 눈빛은 항상 싸늘했고 난 매번 부담을 느꼈다. 잘못을 들추어내야 하는 역할이니 만큼 멀쩡해도 욕을 먹는 포지션인데 발표력까지 엉망이니 가소로웠을 수도 있겠다.


모두가 같은 회의실에 있었다면 나의 상황을 눈치챈 누군가가 한 템포 쉬라고 권유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릴랙스 해도 된다는 사인을 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환경과 조건의 제약 때문일까 편안하게 진행해도 된다는 격려는 받지 못했다. 야속하게도 PT를 이어나가야 했다.


한국말로 직역하면, 거시기 뭐시기라는 표현이라도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며 목소리는 뒤집어졌고, 떨리기 시작했다. 초조해졌고 긴장감은 더 악화되었다. 아니 초조와 긴장이 더 심화되면서 목소리가 뒤집어진 걸 수도 있겠다. 시간 순서대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발에 땀이 차면서 마우스를 쥔 손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목소리가 떨리기 전인지 후인지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은 입안에 침이 한가득 고였으나, 단어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에 침을 삼키는 법조차 까먹었던 거였다. 제 멋대로 튀어나오는 용어로 헛소리를 할 때마다 마스크 안쪽으로 침이 다 쏟아졌다. 수도꼭지가 고장 나 물이 안 잠가지면 집안에 물난리가 나는 것처럼, 입안은 침샘 기능이 고장이라도 난 것인지 침난리가 났다.


일단 마지막 장표까지 발표는 마쳤다.

숨을 만한 쥐구멍은 보이지 않았고, 의연해야 했다.


아무도 내 마스크 안 침 사정과 마우스를 쥔 손 사정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날부터였을까. 부담스럽거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게 되면, 답답하고 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어 책상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사가 지시한 마감 시간이 다가오거나 다자간 협력해야 하는 급한 용무를 해야 할 때는 화장실에 다녀올 시간조차 없었기에 급한 대로 입으로 한숨을 쉬면서 버텼다.


한숨을 쉬면 시원해야 하는데, 머릿속은 더 멍한 느낌이 들었다. 소위 머리가 팽팽 돌아가야 업무도 착착 진행되는 법인데 머리가 무겁기만 했다. 돌아가지 않았다. 포기하는 마음이 손을 들고 구조 요청을 할 때마다, 해내야 한다는 자존심은 포기를 바보 찐따 병신 취급했다. 자존심은 머리를 부여잡고 탈탈 털고 쥐어짜서 업무를 수행하게 만들었다. 안 되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멱살이 잡히니 숨이 막혔다. 아니 숨을 안 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별로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으로 한숨을 몰아쉬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건 알았지만 숨 쉬는 습관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가진 적은 없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면 한숨 쉬는 일도 없어지겠지 했다.




몇 년 전 체형 교정을 위해 발레에 입문한 적이 있다. 거북목과 굽은 어깨, 좌우 비대칭 등, 사무직에 10년 이상 종사하다 보니 밸런스가 깨지고 있었다. 도수치료와 마사지, 침 치료, 부황 등 다양한 의술과 기술의 힘을 빌려보았지만,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그러던 중 발레나 필라테스가 체형 교정에 탁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필라테스보다는 발레에 마음이 끌리던 참이었다. 30대중반의 나이에 레오타드를 입는 것은 한없이 부끄러웠지만 용기를 냈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내가 단단히 착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체형 교정과 예쁜 몸 선을 가지려면 동작만 보기 좋게 하려 해서는 안되고 호흡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는 점.


쑤쑤라 불리는 업 동작에서는 들숨과 함께 몸을 가볍게 띄워야 하고, 다리를 굽히고 팔과 시선이 따라 내려가는 플리에 동작에서는 날숨으로 하체 쪽으로 몸의 중심을 잡아줘야 했다. 그리고 가슴과 어깨를 들썩이는 얕은 숨 대신, 단전에 집중하는 깊은 호흡을 해야 동작도 손끝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를 내리는 자세가 기본이다 보니 자세 교정에는 빠른 효과를 보았다. 호흡은 처음엔 낯설어서 고생을 좀 했다. 하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호흡과 함께 동작이 균형을 이루니 점점 더 재미있어졌다. 발레 학원에 가는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4년을 다녔다.



이직을 하면서 발레를 잠시 쉬다가, 코로나가 터지자 아예 그만두었다. 애석하게도 그시간은 일을 더 열심히 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호흡법은 다 잊었고, 다시 얕은 숨으로 돌아왔다. 수시로 머리가 아팠고, 가벼운 디스크를 앓았던 목 통증이 재발했으며 아침에 찌뿌둥하게 일어난 몸은 점심시간만 지나도 지쳐버렸다.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할 수 없어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마음에 한숨을 몰아쉬게 되었다. 1년을 쉼과 숨 없이 보냈다.


삶 자체가 절로 무기력해졌다.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시기에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는데 우연히 미니멀 리스트들의 책들도 손에 들게 되었고, 그들의 욕심 없는 간결한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명상이나 요가를 한다고 했다.


호기심에 요가 동작을 따라 해 보니 발레 워밍업 동작들과 유사한 것들이 많아서 혼자서도 할 만했다. 더군다나 요가 또한 모든 동작의 기본은 호흡이었다. 다시 깊은 호흡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꾸만 숨 쉬는 법을 까먹곤 했다.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않은 것인지, 내뱉지 못한 것인지 항상 머리가 무겁고 멍했다. 뒤쪽 골이 당기는 기분도 들고,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핑 돌았다. 이러다 죽을까 봐 무서웠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일하다 죽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본능적으로 숨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숨이 아닌 살아있는 숨을 쉬어야 했다.


햇살이 더없이 좋았던 9월 어느 날, 탕비실에서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다 답답함을 참지 않기로 결심했다. 책상을 박차고 나가서 산책을 하고 하늘 사진을 찍었다. 회사 옆 아파트 단지 쪽을 돌면서 일부러 꽃을 만나러 갔다. 남편이 남친이었던 시절 꽃다발 선물은 돈지랄하는 거라며 핀잔을 주었던 내가 꽃을 찾아다니다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하면서도 우아한 발레 동작처럼 우아한 아줌마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자유로운 착각도 들었다. 릴랙스가 되니 호흡이 돌아왔다. 죽을 고비는 넘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니 최소한 일하다 죽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퇴사를 결심한 이후에는, 회사에서 나가면 이렇게 숨을 못 쉬어서 괴로운 일은 없어질 것이니 조금만 더 버티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 타이머를 좀 더 먼 시간으로 돌려놓은 지금은 일을 하면서 속이 복잡하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을 때에는 즉시 멈추고 그날처럼 숨을 쉬러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기로 했다.


당분간 회사 생활을 계속하려는 건, 더 나은 나의 인생을 위한 것이니 직장 생활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며, 몸과 마음을 살피는 것은 그 기본일 것이다. 절대로 월급과 건강을 바꾸어선 안된다. 왜 보고 자료 상신이 늦냐고, 왜 숫자가 틀렸냐고, 왜 메일에 즉시 답을 주지 않냐고 묻는다면, 이러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며 내일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반문해줄 테다. 그냥  울어버릴까.


그리고 성실하게 즉시 대응해주는 건 더 이상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쪽에서 마감 시간을 먼저 물어보거나 스스로 일정을 제시하여 상대방이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야겠다. 그러다 상사가 나를 못살게 굴면 그땐 퇴사 종용이냐고 역공을 해보고 싶다. 최소한의 선만 지키면서 이단 옆차기를 날려볼까 보다.


날이 춥거나 궂어서 밖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때때로 휴게실에 앉아 요가나 명상 호흡법으로 마음을 진정시켜본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것 같지만 굉장히 의식적으로 하나 둘 셋넷 숫자를 세어가며 깊은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이럴 땐 마스크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누구도 내가 마스크 안쪽으로 10초 가까이 숨을 끝까지 내뱉고 있다는 것을 모를 테니.


호흡법은 예방적 유지, 곧 가벼운 문제가 심각한 건강 문제로 불거지지 않도록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최적의 방법이다. 때로 우리가 그 균형을 잃으면, 적절한 숨쉬기로 이를 회복할 수 있다.  >>>호흡의 기술 (제임스 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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