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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15.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0

제 4 장  그린존(Green Zone) 02

표지 사진 출처: 그린존(Green Zone)의 핵심부, 공화국 궁전(The Republican Palace), 이라크 전쟁 전엔 사담 후세인의 집무실이었다가 미군 점령 후엔 미군정청 그리고 미국 대사관으로 쓰였다. 전쟁이 끝나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한 후에야 비로소 이라크 정부청사 건물로 환원되었다. / Wikipedia, <Green Zone>





제 4 장  그린존(Green Zone) 02



대사관 관내에서는 통역 업무가 필요치 않았기에 현우는 해병대 일행과 떨어져 대사관 직원들과 상견례를 하는 것으로 이튼 날 업무를 시작했다. 


대사관 직원이라고 해봐야 대사 포함 여섯 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대사관 무관인 황준엽 중령과 간호장교인 강주희 중위를 제외하면 민간인은 네 명뿐이었다. 단 네 명의 민간인을 경호하기 위해 1개 소대 병력이 대사관을 지킨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린존은 미군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철통같이 방비하는 높이가 3.7미터에 이르는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에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런 안전지대 안에 있는 대사관이 위험할리 만무했다. 


현우는 황 중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질의했다.


“남 병장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저도 그게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그게 바로 국가의 위신 때문이야. 대한민국은 자국 영토에 해당하는 대사관을 지키기 위해 이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국력이 있는 나라다하는 것을 다른 나라에 보여주기 위함이지.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이라크와 수교한 대부분 국가들이 자국 대사관을 그린존 안에 두고 있거든. 그러니 과시해야지. 우리도 명색이 참전국 아닌가. 그러니 못해도 소대 병력쯤은 내세워야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야. 한 블록 건너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 있지, 그곳은 중대 병력이 지키고 있어. 이탈리아는 참전국도 아닌데 말이야. 그게 다 국력을 과시하기 위함이야. 이탈리아는 G-7 국가잖아. 자국은 강대국이라 이거지.”


황 중령은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의 정보장교답게 정치 감각이 뛰어났다. 현우는 간호장교 강 중위와 첫인사를 할 때도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었다. 강 중위는 장교이면서도 내외를 하는지 현우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아르빌에서만 있었다면서요. 바그다드는 아르빌과 많이 다를 거예요. 이곳은 교전지역이잖아요. 마음 단단히 먹어요.”


“어제 아침 공항에서 오다 보니 별일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데요.”


“여름 장마철에도 가끔은 맑은 날이 있잖아요. 운 좋게도 어제,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에요. 이제 곧 알게 될 거예요. 바그다드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리고 이곳 그린존은 이라크가 아니에요, 미군이 지키고 있는 미국 영토지. 그린존 바깥의 레드존(Red Zone: 위험지대)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에요. 무법천지의 통제 불능 지대예요. 혹시라도 바깥에 나갈 일이 있으면 진짜 주의해야 해요. 그리고 바그다드는 역시 밤이 제격이죠. 천일야화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하하하!”


이때까지만 해도 현우는 강 중위가 농담처럼 던진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게 뭘 뜻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현우는 대사관 직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하이다라는 이름의 이라크 중년 사내를 소개받았다. 중키에 은발이 인상적인 서글서글한 외모에 사람 좋아 보이는 따듯한 인상을 풍기는 중년 사내였다. 한국 대사관에 채용된 아랍어 통역으로 현우가 바그다드에 머무는 동안 줄곧 동행하면서 그의 업무를 보조할 사람이었다. 영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붙임성이 없는 성격인지 말수가 적고 은근히 현우에게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현우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하이다와는 업무로 만난 짧은 인연이 될 터였다. 그저 두 주 동안 피차 껄끄러운 관계만 되지 않으면 그만인 관계였다. 


사실 현우에게 어느 누구보다 부담스러운 상대는 해병 소대장 염승진 중위였다. 늘 완벽한 군인 상을 추구하며 하급자들에게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그가 군 생활을 지겨워하는 현우에게는 훨씬 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현우는 어떻게든 염 중위와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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