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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17.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1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1

사진 출처: 바그다드 지도 / <<일랄 리까, 바그다드>>(2015)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1



현우의 첫 임무는 염 중위의 소대와 교체돼 아르빌로 복귀할 백 중위와 소대원들의 환송 연회를 베풀 자리를 예약하는 일이었다. 대사의 직접 지시에 따라 추진하는 업무였다. 


장소는 늘 해오던 대로 티그리스 강 건너 피르도스(Firdos) 광장 근처의 쉐라톤 호텔 뷔페식당이었다. 현우가 맡은 일은 뷔페식당 매니저를 만나 환송연 예약 날짜와 시간을 잡고 참석 인원수에 맞춰 테이블을 세팅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바그다드는 아직까지 민간 시설에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업무를 대면으로 처리해야만 했다. 


현우는 하이다가 운전하는 대사관 차를 타고 쉐라톤 호텔로 향했다. 


현우가 탑승한 차는 바그다드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대 엑센트로 대사관 차량임을 증명하는 국적표시도 없고 기후 탓인지 때가 잔뜩 껴 겉보기엔 중고차처럼 보였다. 일부러 더 낡아 보이라고 가급적 세차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지인의 차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번호판까지 떼버렸다. 그린존을 벗어나 바그다드 시내로 나서면 되도록 남에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안전에 이롭기 때문이라는 것이 하이다의 설명이었다. 경무장한 군용차나 외국 공관 차량은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표적이 된다고 했다. 


대사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입구에서 잠깐 차에서 내려 철문을 여닫고 있는데 염 중위가 소대원들을 대사관 건물 앞마당에 도열시켜 놓고 훈화 중인 모습이 보였다. 염 중위는 부하들에게 대사관 관내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어떠한 적의 침입이라도 단호히 분쇄해 반드시 대사관을 지켜내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토해내고 있었다. 


차가 대사관을 벗어나 그린존 영내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과묵하기만 하던 하이다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계급이 병장이라고 했죠. 남 병장은 이곳 이라크에 왜 왔습니까?”


“그야 물론 이라크를 돕기 위해 왔지요.”


“적을 돕는다? 적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는 나라는 없지요.”


“적이라니요?”


“아까, 새로 온 소대장이 소대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우리를 적이라 부르더군요.”


“한국말을 알아들으시나요?”


“당신이 아랍어를 몇 마디 알아듣듯이 나도 대사관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쉬운 한국어 몇 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답니다.”


순간 현우는 속이 뜨끔했다.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니 앞으로는 하이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당신들을 도우려 온 거지 이라크와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 말대로 우리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위시한 외국군들의 적이 아니라면 5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 전쟁은 누가 누구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요?”


현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라크에 온 지 3개월이 넘었건만 여태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                    

“우리 입장에선 미군을 위시한 모든 외국군은 침략자일 뿐입니다. 미군들이 그러더군요. 이 전쟁은 세계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 모순 중에 모순 아닌가요?”


“난 솔직히 한국이 왜 이 전쟁에 뛰어들었는지 잘 모르겠소. 한국은 이라크와 아무 원한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아르빌의 이라크인들은 우리를 환영하던데요.”


“그들은 이라크인들이 아니오. 쿠르드족은 이라크 땅에 사는 외국인이지 결코 이라크 국민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들은 미군이 이 땅을 침략하자 축제를 벌였다고 하더군요. 그런 사람들이 이라크 국민이랄 수 있겠습니까? 쿠르드족은 독립을 원한다고 들었소. 당신들은 지금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이라크를 분열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라크를 순니와 쉬아로 분열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쿠르디스탄마저 떨어져 나간다면 말 그대로 이라크는 산산조각이 나 버릴 거요.”


“……”


“하긴 나도 생계 때문이라지만 조국을 침략한 외세라고 비판했던 당신들 한국인들에게 빌붙어 먹고사는 처지이니 이런 소리를 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소.”


하이다는 현우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무안해 하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곧 깨닫게 되겠지만 이곳 바그다드는 아르빌과 많이 다를 겁니다. 이곳은 전쟁터니까요.”


하이다 역시 어제 강 중위가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 


하이다는 운전을 하면서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그린존 영내의 주요 건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건물이고 저건 무슨 건물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현우의 귀에는 하이다의 설명이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출발하면서 하이다가 자신에게 던진 화두뿐이었다.


왼편: al-Zaqura Building(수상 관저), 오른편: al-Quds Gate, 출처: Wikipedia, <Green Zone>
왼편: al-Rashid Hotel, 오른편: Ba'ath Party Headquarters, 출처: Wikipedia, <Green Zone>


‘우리는 이라크에 대체 뭘 하러 온 것인가? 싸우러 아니면 지키고 돕기 위해서? 애초 전쟁을 유발한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이었다. 한국은 미국과의 군사동맹 때문에 하이다의 말마따나 아무 상관도 없는 이역만리 이라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끌려 들어왔다. 우리가 진정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고 돕기 위해서 이라크에 온 것이라면 우리는 이라크가 아니라 침략국을 옹호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평화유지군 아니면 미국의 용병? 만약 우리가 진정한 평화유지군이라면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란 말인가?’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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