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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19.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2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2

표지 사진 출처: 피르도스(Firdos) 광장,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를 점령한 미군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이 광장에 서 있던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탱크에 쇠사슬을 걸어 끌어내렸다. 원형 광장 오른쪽에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뜯겨나간 받침대가 보인다. /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촬영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2



현우는 머릿속이 영 복잡했다. 


현우가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차는 어느덧 그린존의 정문에 해당하는 암살자의 문(Assassin's Gate)에 이르렀다. 로마 개선문 상층부에 돔을 얹은 것 같은 모양의 이 석조 아치를 미군은 암살자의 문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근처 경비를 담당한 미군 부대(미 육군 1기갑사단 2여단 6보병대대 알파 중대: 일명 암살자 부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문 앞에 설치된 검문소를 통과하면 그때부터 레드존으로 진입하게 된다. 하이다는 검문소를 통과하면서 검문소 한쪽 편에 서 있는 “You're now entering Green Zone."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힐끗 쳐다보더니 싱긋 웃으며 농담처럼 ”We're now entering Red Zone."이라 말했다. 


T자형 진입로를 따라가다 이라크 국회 의사당 건물을 끼고 우회전하니 전방에 티그리스 강을 건너는 알 주마리야(al-Jumariyah) 다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면서 현우는 티그리스 강을 처음으로 보았다. 수질은 누런 황토색으로 무척 탁해 보였지만 강폭이 한강만큼이나 넓은 게 수량은 풍부해 보였다. 


다리 한가운데 설치돼 있는 검문소를 한 번 더 통과해 티그리스 강 동안에 내려서니 얼마 안 가 넓은 원 모양의 알 타흐리르(al-Tahrir) 광장이 나타났다. 1958년 7월 14일에 일어난 민주혁명을 기념하는 자유 기념비를 중심으로 조성된 광장 둘레에 로터리를 돌아 우회전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니 이윽고 오늘의 목적지 쉐라톤 호텔이 시야에 들어왔다. 


알 타흐리르 광장 중앙에 서 있는 자유 기념비, 출처: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촬영


2003년 4월 9일 바그다드가 미군에게 함락되던 날 미군이 탱크에 쇠사슬을 걸어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렸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피르도스 광장을 우회하면 곧바로 높은 빌딩 두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호텔 단지가 나타난다. 르메르디앙 팔레스타인과 이슈타르 쉐라톤, 둘 다 바그다드를 대표하는 5성급 호텔로 바그다드에 머무는 외국인들이 주로 투숙하는 곳이었기에 미군은 특별히 호텔 단지를 관통하는 큰길 양쪽에 탱크를 배치하고 경비 병력을 상주시켜 보호하고 있었다. 


호텔 단지에 진입할 때 탱크 옆에 서 있던 미군으로부터 간단한 검문을 거쳤다. 미군 병사는 현우의 군복과 하이다가 제시하는 한국 대사관 직원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별 다른 절차 없이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 쉐라톤 호텔과 마주 서 있는 팔레스타인 호텔이 왠지 낯이 익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라크 전쟁의 전황을 보도하는 외신기자들이 등장하는 TV 화면에 배경이 되었던 곳이 바로 이곳 팔레스타인 호텔이었다.

 

왼편: 팔레스타인 호텔, 출처: @ <조선일보> 조○○ 기자  / 오른편: 쉐라톤 호텔, 출처: Wikipedia, <Sheraton Hotel in Baghdad>


쉐라톤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통해 1층 로비로 들어서니 뷔페식당 입구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 


연회 예약 과정에서 현우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하이다는 이 일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게 일을 처리해 나갔다. 뷔페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나 한산했다. 몇몇 외국인들이 텅 빈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이다의 호출로 홀에 모습을 드러낸 뷔페식당 매니저는 히잡도 쓰지 않은 어두운 피부 톤의 젊은 여성이었다. 하이다는 그녀와 아랍어로 대화를 했다. 


현우는 하이다와 뷔페식당 매니저의 대화가 끝난 후 예약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예약 날짜와 시간은 이틀 뒤 정오였다. 인원은 현우를 포함해 총 45명이었다. 뷔페식당 매니저의 영어 솜씨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남녀차별이 심한 아랍 사회에서 전문직을 가진 젊은 여성이라니 이채로웠다. 


예약을 마치고 호텔을 나서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꾀죄죄한 차림새의 어린아이들이 현우와 하이다를 둘러싸더니 일제히 합창이라도 하듯이 “아나 미스킨, 안타 카림!(나는 불쌍하고 당신은 자비롭습니다. 아랍어로 구걸을 할 때 쓰는 관용구)”이라고 외쳤다.


“뭐라는 거죠?” 당황한 현우가 물었다. 


“돈을 달라고 구걸을 하는 겁니다.”


하이다는 무섭게 인상을 쓰고 고함을 질러 구걸하는 아이들을 쫓아 버렸다. 아이들은 하이다의 위세에 눌려 흩어졌지만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두 사람을 뒤따르며 계속해서 동냥을 했다. 아이들을 피해 급히 차에 올라타 출발하자마자 하이다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저 모습이 요즘 바그다드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전쟁 전 바그다드 시내에서 이런 꼴은 결코 볼 수 없었소. 우린 비록 가난했지만 그래도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국민이었소. 그런데 나라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저 모양이라니, 어찌 이라크의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이요. 어린아이들이 굶주림에 지쳐 저러는 거라는 건 알지만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소. 나 원 참!”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3에서 계속>後後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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