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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22.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3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3

표지 사진 출처: 아부 누와스 거리 입구의 천일야화 동상 /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촬영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3



잠시 생각에 감겼던 현우가 갑자기 말했다.


“돌아가기 전에 바그다드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죠. 당신이 말한 바그다드 시내의 현실을 보고 싶습니다.”


운전 중이던 하이다는 놀란 듯 흠칫 현우를 쳐다보더니 차를 길가에 대고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 제정신이요? 지금 이곳은 이라크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터란 말이요. 당신은 대체 바그다드가 어떤 곳이라 생각하시오? 화려하고 신비로운 아라비안나이트의 도시?”


“오늘이 바그다드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인데, 그동안은 별일 없던데요.”


“하긴 요 며칠은 이상하게도 조용했지. 하지만 안심할 수 없소. 지금 바그다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전쟁터요. 한가롭게 유람이나 다닐만한 곳이 아니란 말이요.”


“시내 관광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바그다드의 현실을 직시하고 싶습니다. 난 이라크에 온 지 벌써 4개월째인데, 말이 좋아 참전이지 전쟁은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지금 이라크가 정말로 전쟁 중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하이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를 짓더니 현우에게 되물었다.


“정말 위험해도 상관없겠소? 무슨 일이 생겨도 난 책임 못 집니다. 그리고 호신용 무기는 가지고 있나요?”


현우는 말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집을 손으로 가볍게 툭툭 쳐보였다. 그린존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니 염 중위가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며 전쟁터에서 무장도 하지 않은 군인은 군인도 아니라며 강제로 채워준 K-5 권총이었다. 그러나 사실 호기로운 제스처와는 달리 현우는 권총을 다룰 줄 몰랐다. 현우는 그저 일반 보병이었기에 한국군의 제식 소총인 K-2 이외에 다른 총기는 쏘아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좋소. 시내를 한 바퀴 돌아봅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안전은 장담할 수 없소. 그리고 그 전투 헬멧과 군복 상의는 벗는 게 좋겠소. 군복을 입고 있으면 오히려 표적이 되기 십상이니까.”


현우는 하이다의 말을 쫓아 전투 헬멧과 군복 상의를 벗어 뒷좌석에 놓고 러닝셔츠 차림이 되었다. 군번줄은 벗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현우가 준비를 마치자 하이다는 차를 다시 출발시켰다. 하이다는 중앙선을 넘어 U턴을 해 차를 남쪽으로 몰고 내려갔다. 차는 피로도스 광장을 지나 알 사둔(al-Sa'doon) 거리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이다는 남쪽으로 곧게 뻗은 알 사둔 거리가 양 갈래도 갈라지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길을 갈아타면서 교차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동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뭔지는 알지요?”


하이다가 지목하는 쪽을 바라보니 어릴 적 읽었던 천일야화의 수많은 일화 중 하나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알리바바의 지혜로운 여종이 도둑들이 숨어있는 항아리에 끓는 기름을 들이붓는 장면이군요.”


“바로 맞췄소. 알리바바의 여종 카흐라마나의 동상입니다. 그런데 저건 실은 그냥 동상이 아니라 분수대였소. 그런데 지금은 단수가 돼 더 이상 물이 뿜어져 나오지 않죠. 바그다드는 침공 당시에 시간이 멎어버렸소. 아마도 저 분수는 바그다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거요. 아마도 저 분수가 다시 뿜어져 나오는 날 바그다드는 다시 살아날 거요.”


출처: Wikidata, <Kahramana statue>


하이다의 말은 현우의 가슴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하이다는 다시 우회전을 해 강변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바로 강 건너에 그린존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공화국 궁전(Republican Palace)이 마주 바라보이는 지점이었다. 대로가 시작되는 초입에 작은 공원이 있고 공원 입구에 천일야화의 기본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 유명한 두 주인공, 의처증에 빠져 초야를 치르고 나면 왕비가 된 처녀들을 죽이는 술탄 샤흐리야르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술탄을 치유하는 재담꾼 왕비 셰에라자드의 동상이 서있었다. 잠시 차를 세운 하이다는 다시 동상을 지목하며 말했다.


"저게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찬란했던 바그다드의 과거요. 천일야화의 배경이 되었던 8세기 바그다드는 세계의 중심이었소. 지금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이 대로의 이름은 아부 누와스(Abu Nuwas)입니다. 아랍의 이태백이라 불린 압바스 왕조 시대의 대문호 낭만 시인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겁니다.”


하이다는 차를 다시 출발시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거리는 전쟁 전 바그다드 최고의 번화가였소. 강변을 따라 고급 상점과 카페,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던 곳이었죠. 하지만 보시오, 지금은 현실이 어떤지.”


하이다의 말대로 길가에 늘어선 건물들에 걸린 간판에는 알라딘 중국 식당, 신드바드 카펫 상점, 알라시드 나이트 카페 등등 천일야화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딴 상호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는 단 한 곳도 없어 보였다. 상점의 셔터는 모두 내려져 있었고 드문드문 간판이 떨어져 나간 곳이나 아예 건물이 반파된 곳도 눈에 띄었다. 한 마디로 죽은 거리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 상점가, 출처: @ <조선일보> 조○○ 기자


“전쟁이 발발했던 첫해까지만 해도 이곳에 상점들은 대부분 영업을 이어갔었소. 하지만 테러가 난무하기 시작한 2004년부터는 한가로이 이곳에 와서 쇼핑이나 외식을 즐기는 바그다드 시민은 사라져 버렸소. 손님이 없으니 당연히 상점들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이슬람 원리주의에 빠진 테러리스트들은 이곳이 사치와 타락의 온상이라고 보고 집중 공격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이 될 수밖에…… 나도 전쟁 전엔 가끔 가족과 함께 마스쿠프(티그리스 강에서 낚아 올린 잉어 통구이 요리, 바그다드의 최고급 특산 요리이다.)를 먹으러 이곳에 오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언제 다시 마스쿠프 맛을 보게 될지 모르겠소.”


“언젠가는 바그다드에서도 지난날의 일상이 회복되겠지요.”


“글쎄, 과연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소. 지금까지는 그저 맛보기였소. 앞으로 보게 될 광경은 지금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할 거요.”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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