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사대제 Jan 24.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4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4

표지 사진 출처: 알 사드르 시티에 은거하고 있는 테러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군 부대가 장벽을 통과해 시가지 내부로 진입하고 있다. / 'Operation in Sadr City Is an Iraqi Success, So Far', Robert Nickelsberg/Getty Images, for The New York TimesMay 21, 2008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4(後篇)



하이다는 티그리스 강을 따라 조성된 강변도로를 타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이 강변도로는 전쟁 전엔 오직 사담 후세인만이 이용할 수 있는 대통령 전용 도로였소. 그런데 독재가 무너진 이후엔 이렇게 아무나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오. 전쟁이 불러온 몇 안 되는 긍정적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하이다가 모는 차는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지어진 유럽풍 건물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는 무타납비(Mutanabbi) 지역에서 우회전해서 무스탄씨리야 대학(Mustansiriya University)을 지나 이맘 알리 거리(Iman Ali street)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그린존을 둘러싸고 있는 3.7미터 높이의 두꺼운 콘크리트 장벽과 똑같은 차단벽이 처진 구역에 이르렀다. 격자형 도로 사이사이로 엇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것을 보아 사전에 계획된 신시가지인 것 같았다. 하이다는 차창 너머로 신시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바로 악명 높은 알 사드르 시티(al-Sadr City)입니다. 전쟁 전엔 사담 시티(Saddam City)라고 불리던 곳이죠. 저기가 바로 바그다드의 대표적 빈민촌이자 테러 조직과 저항 세력의 본거지입니다.”


현우가 관심을 보이며 막 입을 떼려는데, 미리 입막음을 하려는지 하이다가 서둘러 단호히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들어가 보자는 말은 하지 마시오. 저곳은 미군도 진입하길 꺼릴 만큼 위험한 곳이요. 저기 보이는 장벽은 누군가를 막기 위한 방호벽이 아니라 누군가가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 놓기 위한 차단벽이요. 바그다드 시내에서 테러가 격화되자 미군이 부랴부랴 설치했습니다.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알 사드르 시티로 들어가는 진입로, 장벽과 장벽 사이의 단절 구간에는 예의 탱크가 지키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고 많은 수의 미군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현우의 눈엔 알 사드르 시티가 과거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가두었던 게토처럼 보여 마음이 씁쓸했다.

 

하이다는 알 사드르 시티를 지나 좌회전해 아마 다리(Ama bridge)를 타고 다시 티그리스 강 서안으로 건너왔다. 강을 건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빛 찬란한 쌍둥이 돔이 눈에 띄는 화려하고 웅장한 마스지드가 나타났다.

 

알 카디미아 마스지드, 출처: @ <조선일보> 조○○ 기자


“저 건물이 바로 그 유명한 알 카디미야 마스지드(al-Kadhimiya masjid)입니다. 쉬아파 성지 중 한 곳이죠.”


“그럼 이번엔 이슬람 사원을 구경하는 건가요?”


“아니요. 당신과 나는 저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저곳은 쉬아파 성지이기 때문에 순니파인 나나 외국인에다 이교도인 남 병장은 절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쉬아파 무슬림들이 우리를 가만 두지 않을 겁니다.”


“순니, 쉬아 도대체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죠? 21세기에 종교분쟁이라니, 시대착오적이지 않나요?”


“당신네 이교도들에겐 몰라도 우리 무슬림들에겐 종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순니와 쉬아 간의 종파갈등은 1,400년 묵은 심각한 문제라오. 세월이 흘러 시대가 달라졌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슬람 사원 구경을 하지 않으려면 이곳엔 왜 온 거죠?”


하이다는 알 카디미야 마스지드 앞에서 차를 좌회전시켜 남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검지를 앞으로 뻗어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곳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저기가 바로 카디미야 바자르(Bazaar)입니다. 바그다드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죠. 저곳은 한때 이 세상의 중심이었소. 8세기엔 저곳에서 동서양의 상인들이 만나 진귀한 상품들을 거래하던 실크로드 선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시장이었소. 하지만 지금은 어떤 꼴인지 한 번 보시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카디미야 바자르는 시장이라기보다 철공소 거리 같아 보였다. 남북으로 뚫린 큰길을 따라 형성된 바자르에는 드문드문 야채나 과일, 옷가지 등을 파는 상점과 차와 커피를 파는 카페가 보이기는 했지만 거리 양편엔 상점보다는 대장간 수준의 조잡한 각종 공방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무타납비 지역의 재래시장 골목, 출처: @ <조선일보> 조○○ 기자


“여기가 시장이라고요? 내 눈엔 거대한 가내수공업장 같아 보이는데요.”


“오랜 경제봉쇄와 전쟁 때문에 이라크에는 현지에서 생산된 물건이든 수입품이든 간에 물자의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품귀현상이 벌어졌소. 그러니 기존의 낡은 물건들을 고치고 또 고쳐 쓸 수밖에…… 아무리 전쟁 통이라도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시장이 이렇게 변해버린 겁니다.”


현우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하이다의 말대로 바그다드의 전성기에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시장이었을 것이다. 알라딘, 알리바바, 신드바드 등 천일야화의 주인공들이 실존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여기 이 시장 거리를 무대로 활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화려했던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그저 지저분하고 초라한 공방투성이의 재래시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세월의 무상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전쟁이라는 잔인한 현실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현우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5에서 계속>


이전 13화 꾸리 앗 딘(Coree ad-Din)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