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사대제 Feb 26.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5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5

표지 사진 출처: 전화(戰禍)로 철저히 파괴된 바그다드 거리 @ <조선일보> 조○○ 기자





제 5 장  슬픈 도시, 바그다드 05



시장 거리를 벗어난 하이다는 이제 그만 돌아가자며 차를 몰아 바그다드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7월 14일 거리(the 14th of July street)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동하는 내내 차창 밖에 바그다드 시내에는 온전한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도시는 온통 찢기고 부서지고 무너져 내려 거대한 폐허를 연상케 했다. 어느 쪽으로 시선을 돌려도 전화(戰禍)가 할퀴고 간 상흔을 피할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어느덧 그린존에 가까워 갔다. 그린존과 인접한 북쪽엔 바그다드의 중앙공원이라 할 수 있는 알 자우라 파크(al-Zawra'a park)가 자리 잡고 있다. 이라크에서 가장 큰 공원이라고 하는 알 자우라 파크는 바그다드의 허파 역할을 하는 드넓은 녹지 위에 인공호수, 동물원, 식물원, 놀이공원, 스포츠 시설 등이 조성돼 있어 바그다드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하이다는 그린존으로 복귀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이 있다며 알 자우라 파크 안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원은 전쟁 통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목은 메마르고 잡초만 무성한 황폐한 상태였다. 게다가 공원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커다란 인공호수 주변에는 나뭇가지로 기둥을 대고 천조각과 대추야자나무 이파리를 얼기설기 엮어 벽과 지붕을 대신한 움막들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었다. 거대한 규모였다. 씁쓸한 표정으로 하이다가 말했다.


“저곳은 전쟁 중에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루어진 난민촌입니다. 그나마 이곳은 미군이 가까이 있어 비교적 안전하고 마실 물과 먹을거리가 있으니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거죠.”


“먹을거리? 뭘 먹는다는 거죠?”


“여기 사는 사람들은 그린존에서 나온 쓰레기를 뒤져 얻은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그린존 안쪽은 풍요롭잖소. 그린존에서 매일 배출되는 음식 쓰레기의 양은 막대합니다. 그린존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먹다 남은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그것이 매일매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식량이 된답니다.”


난민촌의 모습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그런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땟국에 전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물가에 나와 물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헐벗고 굶주렸어도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은 난민촌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애처로웠다. 


아이들을 바라보던 현우의 눈가에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민망함을 견딜 수 없었던 현우는 시선을 돌리며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자며 하이다를 재촉했다. 하이다는 말없이 차를 출발시켜 난민촌을 떠났다. 자동차 뒷거울에 비친 난민촌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자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이다가 물었다. 


War Refugees' Mud Huts in Baghdad @ Reuters. Nov. 27, 2006



“오늘 둘러본 바그다드의 현실이 어떻던 가요? 당신이 기대했던 모습이었나요?”


현우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없이 하이다의 얼굴을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2003년 3월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이라크 국민들을 독재정권의 폭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었소. 그래서 침공 20여 일 후 바그다드가 함락되던 날 시민들은 미군을 해방군이라 여겨 거리로 뛰쳐나가 그들을 열렬히 환영했었지요. 사실 나도 그날 미군이 피르도스 광장에서 탱크에 쇠사슬을 걸어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릴 때 박수를 치며 환호했던 군중의 한 사람이었소."


Pulling down the statue of Saddam Hussein in Firdos Square @ AP. April 9. 2003


"하지만 미국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데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져도 대량살상무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소. 그리고 미국이 약속했던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은 지금까지도 요원한 상태요. 왠지 아시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이라크 국민들의 자유와 평화, 번영이 아니었기 때문이오. 미국은 이라크 땅과 그 땅에서 나는 석유만을 원했소. 탐욕이 목적이면서도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한다면서 이라크를 분열시키고 철저히 파괴했지요. 그러니 이 모양, 이 꼴일 수밖에……”


“그래도 사담 후세인은 사악한 독재자였잖습니까? 그를 몰아낸 것은 잘한 일 아닌가요?


“하긴 그 얼간이 같은 사담 후세인이 외세의 침략을 불러들인 측면이 있지. 하지만 전쟁 전 이라크 국민들은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 세끼 밥은 먹고 고대광실(高臺廣室)은 아닐지라도 저녁때 두 다리 뻗고 누울 제 집 한 칸은 지니고 사는 처지였소. 그런데 전쟁이 그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소. 그게 우리 이라크인들이 미군을 점령군이라 여기며 저항하는 이유요. 우리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이 질문에도 역시 현우는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문뜩 하이다의 과거가 궁금해진 현우는 대답 대신 역으로 질문을 했다.


“전쟁 전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이라크 석유공사의 수출 담당 직원이었소. 나름 이라크에서는 선택받은 직업이었죠. 하던 일 때문에 비교적 외국 사정에 밝고 외국인 인맥도 갖고 있었던 덕분에 한국 대사관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나와 내 가족에겐 대단한 행운이었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밥을 굶지 않고 살 수 있으니 말이요. 언젠가는 이 전쟁도 끝날 거요. 영원히 지속되는 전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난 솔직히 나를 비롯한 모든 이라크 국민들이 미국이 호언장담했던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는 고사하고 과거의 일상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소.”


이 역시 현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우라 파크를 벗어나기 전 잠시 차를 세운 하이다는 현우에게 벗어놓은 전투 헬멧과 군복을 다시 갖춰 입으라고 권했다.


“이제 곧 그린존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곳은 이라크 땅이 아니니 그곳에 어울리는 복장을 해야죠.”


현우가 전투 헬멧과 군복 상의를 걸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하이다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 안 가 저 멀리 암살자의 문이 보였다. 현우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바그다드 탐방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제 6 장 전쟁의 실상 01에서 계속>

이전 14화 꾸리 앗 딘(Coree ad-Din) 1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