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전쟁의 실상 02
표지 사진 출처: 바그다드 거리에 방치된 이라크군 T-72 전차 @ <조선일보> 조○○ 기자
6월 한낮의 바그다드 기후는 불지옥을 연상케 할 만큼 혹독하다. 낮 최고 기온이 무려 50도에서 55도 사이를 오르내렸다. 아르빌의 기후는 바그다드에 비하면 서늘하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현우는 타는 듯한 한낮의 더위를 피해 호텔 정문 옆 그늘에 몸을 숨긴 채 1.5리터 생수병을 기울여 강생수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미군 병사가 그에게 다가와 손을 들어 물을 마시는 시늉을 해 보였다. 현우가 물을 달라는 뜻이냐고 되물으니 미군 병사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당신은 영어를 할 줄 아는군요. 네, 이 뙤약볕에 경계 근무를 서고 있자니 무척 목이 마릅니다. 괜찮다면 물을 좀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현우가 흔쾌히 생수병을 건네자 그 미군 병사는 목을 뒤로 젖히고 시원스레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현우는 문뜩 궁금증이 생겼다. 무척 어려 보이고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색, 스페인어 억양이 짙게 느껴지는 어색한 영어 발음 등 보통 미국인이라 하기엔 무척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병사였다. 가슴팍에 붙어있는 명찰을 살펴보니 이름은 마누엘 이바네즈(Manuel Ivarez), 계급은 이병이었다.
“고향이 어디인가요?”
“혹시 온두라스(Honduras)의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라는 도시를 아시나요? 난 그곳의 도시 외곽 빈민가 출신이랍니다.”
“아, 그 중미의 범죄로 악명 높은…… 아,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당신 말대로 온두라스는 엉망진창인 나라죠. 그런데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현우는 몸을 돌려 군복 왼팔에 붙어 있는 태극마크를 내보이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그런데 난 온두라스 사람은 처음 만나보는군요.”
“코리아라…… 나도 처음 들어봅니다. 아, 이해하세요. 난 세상 물정 모르는 중미 출신의 촌뜨기랍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해외라고는 이곳 이라크가 처음일 정도입니다. 사실 파병 나올 때까지 이라크가 어디 붙은 나라인지도 몰랐습니다.”
이바레즈 이병은 계면쩍어하며 대답했다.
“그러면 미국인이 아니군요? 그런데 온두라스 사람이 이곳에 왜?”
“아직은 아니죠. 하지만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나면 난 어엿한 미국 시민이 돼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럼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참전했다는 말입니까?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내 조국 온두라스는 희망이 없는 땅입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범죄의 천국이죠. 온두라스는 갱단이 총을 들고 경찰서를 습격하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 미래가 있겠습니까? 만약 부모님이 가족과 함께 조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무작정 밀입국하지 않았다면 난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마약 범죄에 연루돼 갱단에게 살해당했을 겁니다.”
“언제 미국에 입국했나요?”
“내가 12살 때니까 지금부터 7년 전이군요. 온두라스에 비하면 미국은 천국이었습니다. 난 온두라스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쓰레기장을 뒤져 쓸 만한 폐품을 모아 파는 일을 했었습니다. 물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죠. 하지만 미국에 넘어온 뒤론 비록 부모님은 날품팔이 신세였지만 그래도 난 텍사스에서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밀입국자 신세는 면할 수 없었죠. 당연히 번듯한 직업도 얻을 수 없었고…… 그러다 우연히 군복무를 마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주저 없이 입대했습니다. 그렇게 입대해 신병훈련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이곳 이라크에 파병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위험천만한 전쟁터에…… 그러다 전사하면 미국 시민권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그렇게 묻는 걸 보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코리아는 참 살기 좋은 나라인 모양이군요. 그러나 내가 태어난 나라 온두라스는 마약 이권을 두고 벌어지는 갱단 간의 무력 다툼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강력범죄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갱단의 폭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라크는 지금 전쟁 중이지만 최소한 미군은 여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들은 해치지 않죠. 어떻게 보면 이라크가 온두라스보다 더 안전한 나라인지도 모릅니다. 난 미군의 일원으로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설사 내가 죽는다 해도 난 미국인으로서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겁니다. 덕분에 내 가족들은 합법적인 미국 시민이 돼 기회의 땅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번듯한 나라에 사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까?”
이바네즈 이병은 며칠 전 이라크인 통역 하이다가 물었던 질문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런데 현우는 이번엔 하이다에게 했던 대답, 이라크를 돕기 위해 왔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현우는 이미 하이다와의 문답을 통해 그것이 올바른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두 사람 사이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현우가 한창 대답이 궁색해 당황스러워하고 있는데 때마침 환송연을 끝마친 백 중위 일행이 호텔 입구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현우는 일행을 핑계로 그 어색한 자리를 겨우 모면할 수 있었다.
대답 대신 현우는 이바네즈 이병에게 몸성히 무사 귀환해 꼭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라고 축원해 주었다. 이바네즈 이병도 환한 미소와 함께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넸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바네즈 이병과의 조우는 현우에게 전쟁과 참전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심사숙고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전쟁에 미래를 걸고 이라크에 온 사람은 비단 이바네즈 이병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전 현우는 그린존 안에서 구르카 용병들을 본 적이 있었다. 구르카족은 영국군에 소속된 네팔의 고산족 용병부대로 전장에서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쿠크리’라는 꺽쇠 모양의 날카로운 칼을 즐겨 사용하는 용맹한 전사 집단이었다. 구르카족은 영국 시민권을 얻기 위함은 아니지만 군복무 중 받는 높은 급여와 퇴역 후 받게 될 연금을 목적으로 영국이 참전하는 전쟁마다 첨병으로 활약해 왔다. 전쟁터가 바로 그들의 직장인 셈이었다.
그 밖에도 이라크 전쟁에는 돈을 목적으로 한 많은 민간인들이 참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쟁을 외주ㆍ민영화했다. 각종 군수지원은 물론이고 직접적인 전투 작전에도 美국방부로부터 하청을 받은 여러 PMCs(Private Military Companies)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대부분 퇴역 군인들로 구성된 민간 군사기업들에게 전쟁 그 자체가 바로 비즈니스였다. 그린존에는 군인만큼이나 많은 수의 PMC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개인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 특정 단체나 개개인들에겐 그저 돈벌이 수단일 따름이었다.
PMC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린존에는 또 다른 종류의 민간인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기독교 단체들이 이라크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전쟁터에 들어와 있었다. 신앙심이 너무 두터운 건지 아니면 정신이 살짝 나간 건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만용에 가까운 그들의 용기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이래저래 이라크 전쟁은 한마디로 요지경 속이었다.
<제 7 장 구사일생 01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