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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Mar 11.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19

제 7 장  구사일생 02

표지 사진 출처: Suicide Bomb Attack in front of Assassin's Gate @ AP. Jan 19, 2004





제 7 장  구사일생 02



거듭되는 무장괴한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멈춰 섰던 미군정 차량들이 속속 대열을 이탈해 총격전 현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맨 먼저 네 번째 차량이 급히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알 주마리야 다리 쪽으로 빠져나가자 후속 차량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두 번째 차량을 들이받고 멈춰 섰던 세 번째 차량도 후미를 막고 있던 네 번째 차량이 비켜나자 즉시 후진했다가 우회전하여 여섯 번째 차량을 쫓아 알 주마리야 다리 쪽으로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반파된 두 번째 차량이 불이 붙은 채로 덜컹거리며 후진해 가까스로 현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두 차례나 집중공격을 받고 멈춰 선 선두 차량은 끝내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전소되고 말았다. 


미군정 차량들은 모두 방탄 처리가 되어 있는지 무수히 총격을 받아 가면서도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기습공격을 받고 잠시 당황한 듯했던 미군은 미군정 차량들이 비켜나 시야가 확보되자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야파 거리를 사이에 두고 미군과 무장괴한들 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미군이 화력을 총동원해 반격에 나서자 금방 전세가 역전되었다. 


미군의 우세한 화력에 압도당한 무장괴한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시위대 군중과 뒤섞여 도주하기 시작했다. 도로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시위대를 향해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자 시위대는 아우성을 치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우회전 대기선에 서 있던 차량들 중에 현우가 몰던 군용 트럭은 앞에서 세 번째였는데, 앞차 두 대가 총격전을 피해 유턴을 시도했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염 중위가 덜덜 떨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어 앞차를 가리키며 어서 빨리 앞차들을 따라 유턴을 하라고 현우를 다그쳤다. 


선두 차가 유턴을 하고 두 번째 차가 막 돌아서고 나니 이제 현우가 탄 군용 트럭이 선두가 되었다. 앞차들을 따라 유턴을 시도하려는데 수동 기어 사용이 익숙지 않았던 현우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그만 시동을 꺼뜨리고 말았다. 서둘러 시동을 다시 켜려고 했건만 당황한 탓인지 차는 영 말을 듣지 않았다. 


뒤차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차선을 비집고 나와 현우가 타고 있던 군용 트럭을 앞질러 유턴을 하려 했다. 뒤차들의 성급한 움직임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 현우의 트럭을 추월해 유턴을 하려던 뒤차들은 이미 유턴을 한 앞차 두 대의 진로를 가로막으면서 멈춰 섰고 미군의 총격을 피해 도로로 내려선 군중과 뒤엉키면서 모든 차량이 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앞차들이 비켜나면서 현우가 타고 있던 트럭은 이제 무방비 상태로 총격전 한복판으로 내몰린 상태였다. 


정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섬광이 일면서 총탄이 핑핑 날아다녔다. 미군의 브래들리 장갑차까지 공격에 가담했는지 느리고 둔탁한 25mm 기관포 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브래들리 장갑차에 탑재된 25mm 기관포는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면 탱크의 장갑판도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인 무기다. 큰 북을 마구 두드리는 것 같은 25mm 기관포 소리가 고막을 울릴 때마다 현우는 엄습해 오는 공포감에 온몸이 점점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Firing 25mm Bushmaster from M-2 Bradley IFV @ UPI. 2003. 3. 29.


현우는 자신이 목도하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가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현우는 공포에 사로잡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귀가 먼 것도 아닌데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총성과 사람들의 아우성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시간이 흐름이 느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주위의 움직임이 모두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마치 어두운 영화관에 홀로 앉아 느리게 돌아가는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총알 한 발이 트럭 앞 유리를 뚫고 들어와 현우와 염 중위 사이를 통과해 뒤 유리를 깨고 날아가 버렸다. 총알이 관통한 앞 유리는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짝짝 금이 갔다. 연이어 날아든 총탄 서너 발이 연속해서 트럭 보닛에 맞고 튀어 오르면서 스파크와 함께 날카로운 금속음이 현우의 귀청을 때렸다. 


그 순간 현우는 그만 혼비백산해 버렸다. 넋이 나간 현우는 간신히 몸을 움직여 운전석 옆 차문을 열고 뛰어내린 후 도로 위를 엉금엉금 기어 트럭 밑으로 숨어들었다. 제 몸 하나 살리기에 급급해 옆에 앉은 염 중위는 챙길 여력 따위는 없었다. 가까스로 군용 트럭 밑으로 몸을 숨기기는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온몸이 경직돼 옴짝달쌀할 수조차 없었다. 

 




<제 7 장  구사일생 0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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