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 시간의 꽃향기다. 이해인 수녀님을 처음으로 뵌 이후 아직도 그 향기가 은은히 스며들어 마음이 훈훈하다,
코엑스 별마당에서 수녀님 강의가 있다고 해서 분주하게 일 처리하고 별마당으로 향한다. 이미 입장하기 위해 긴 줄이 있었지만 무사히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미소를 가득 담고 등장하신 수녀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지금까지 가진 나의 복잡한 세계가 사라지고, 수녀님의 미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6월의 시>를 읽으시면서 '밝아져라 맑아져라 ' 하시는 소리에 내 정신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암투병하신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시며 자기 몸에게 '예쁘다, 잘한다, 수고했다'는 말을 자주 해 주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내 시선이 항상 타인에게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나의 생각에 사로 잡힌 적이 많아, 나 자신 속에 들어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수녀님이 뽑으신 그동안의 시를 낭독하는 객석 찬스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 수녀님 앞에서 낭독하기 원했고 나도 열심히 손을 들어 간신히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낭독한 시는 <우정의 일기 2>였다. 친구에게 보내는 12마디 이야기를 계절로 나누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12월의 '제일 예쁜 선물의 집에 들어가 네가 선물임을 기억하며 선물을 살게'가 가장 인상적인 예쁜 구절이었다. 낭독 후 수녀님은 나를 바라보시며 시의 배경을 잠깐 들려주신다. 예기치 않은 귀중한 나의 시간이었다. 시인 앞에서 나의 느낌을 목소리로 들려주어서 처음으로 시낭송 배우길 잘했다 생각하는 순간이었고, 그녀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 머물며 이야기해 주신 것도 소중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과수원길 노래에 맞추어 까치발 드시며 정성을 다해 손동작하시는 귀여운 율동도 인상적이었다. 한 가지 일에 정성스러움이 배인 동작이어서 감동이었나 보다.
나는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수녀님의 시를 읽으며 수녀님의 '민들레 영토'를 좋아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는 순례자와 같아서 작은 위로와 작은 사랑이 민들레 솜털처럼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에 꽃처럼 피어나길 원하는 수녀님의 '민들레 영토'를 읽어 본 적이 있었다. 유난히 '작은'을 강조하시는 수녀님의 말씀에 겸손을 배운다.
선물로 받은 80살을 맞이하신 60주년 기념신작 <소중한 보물들>을 받고 수녀님과 사진을 함께 찍을 수 있는 영광도 함께 얻었다. 특히 객석 낭독으로 받은 파란 하늘을 나는 나비를 연상케 하는 스카프와 미니 캘린더를 조심스럽게 펼쳐본다. 훨훨 꽃을 향해 날아다니는 나비를 좋아해 <나비에게> 란 시를 쓰시고 12 계절을 상징하는 미니 캘린더를 주시고 싶으셨나 생각해 본다.
스카프를 두르려다 갑자기 엄마생각이 났다. 엄마가 90살쯤이었을 때 구례 사선암에 힘들게 절에 가신적이 있었다. 그 절에서 만난 남모르는 스님에게 독실한 불교신자인 엄마 손을 한번 잡아주십사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 스님은 엄마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더니 기도하시며 쓰시던 염주라고 엄마손에 꼭 쥐어 주셨다. 엄마는 너무 기뻐하시며 그 염주를 소중하게 간직하셨다.
나도 이 좋은 선물인 수녀님의 향기를 내가 가질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소중한 손주를 간직한 딸에게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꽃향기를 맡으면 꽃사람이 된다는 수녀님 말씀대로 파란 하늘과 꽃 그리고 예쁜 나비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손주가 태어나길 바라며, 딸과 만나는 날 딸에게 선물을 주리라 생각해 본다.
수녀님은 당신이 남모르게 기쁨을 주는 선한 영향력을 알고 계실까? 수녀님의 향기를 맡기 위해 선물 받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