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이 엄격한 규칙을 남기고 사라진 뒤 며칠 후, 한 무리의 길냥이들이 어슬렁거리며 가게 앞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동네 양아치들처럼, 목을 길게 앞으로 쭈욱 늘어뜨리고 머리는 앞발에 닿을 듯 끄덕끄덕, 꼿꼿이 세운 꼬리는 렌토(Lento)에 맞춰진 메트로놈(metronome)처럼 까딱까딱, 몸은 힘이 잔뜩 들어간 듯 무겁고 걸음걸이는 거만했다.
녀석들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폭 3미터 찻길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의 심리적 시간으론 한 시간쯤 걸렸을까, 그들은 가게 앞에 자리를 틀었다.
양아치들의 본색을 드러내듯 한 마리는 가게 출입구 앞을 어슬렁거렸고 한 마리는 배를 깔고 칼로 누워 꼬리를 바닥에 탁탁 치며 위험 있게 흔들었고 다른 아이는 헝클어진 털을 고르고 먼지를 떨듯 털을 핥아대고 있었다.
또 한 마리는 가늘고 예리한 2개의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이 찢어지라 하품을 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털 색깔이 한 가족이 아님을 짐작하게 했다.
그들 중에는 태어난 지 몇 개월이 안된 아이와 몹시 아파 보이는 나이 든 녀석도 있었다.
아픈 놈의 주둥이에서 침이 흘러 주둥이 털이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두 세 방울은 수염 끝에 대롱대롱 길게 매달려있었다.
딱 보아도 주둥이가 몹시 아파 보였다.
이 아이는 견디기 힘든 통증을 잠재우듯 앞발로 주둥이를 연신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안쓰럽고 불쌍했다.
대체 이 무리들은 주인님과 어떤 관계일까?
주인님이 새 집사를 들였다는 말을 듣고 상견례 차 찾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까칠하고 냉정한 주인님 성격에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혹시 이들도 밥을 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주인님을 위한 식기에 사료를 담아 얼른 내왔다.
나의 짐작이 맞았는지 그들은 서열 순 대로 차례로 사료를 먹었다.
아픈 녀석은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게 비참하게 느껴질 만큼 괴로워하며 사료를 먹었다.
사료를 한 입 물고는 머리를 허공에다 이리저리 흔들었고 몸부림치듯 몸을 비틀며 아주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내 맘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아프게 구겨졌다.
난 이 녀석이 아파하는 만큼 딱딱한 사료를 건네준 게 너무너무 미안해졌다.
한참을 사료와 실랑이하던 녀석은 배고픈 허기만 채운 듯 사료 앞에서 돌아섰다.
그러자 무리들은 목적을 달성한 듯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그들이 걸어온 길로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그들은 매일매일 찾아왔지만, 날이 갈 수 록 한 마리씩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아픈 녀석만 매일 밥을 먹으러 찾아왔다.
난 아픈 녀석을 위해 캔과 진통제를 준비했고 캔이 없을 땐 사료를 물에 불려서 밥을 챙겨 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아픈 녀석은 조금 나아진 듯 사료를 전보다 많이 먹었고 예전보다 덜 아파 보였다.
축축한 주둥이도 많이 말라있었다.
이 녀석을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잡을 수 없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내가 챙겨주는 약간의 진통제로는 고통은 줄일 수 있어도 완쾌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흘렀다.
그 녀석은 여전히 아파 보였지만 주둥이가 뽀송뽀송 말라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을 때쯤 이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무리들 중 어느 녀석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올까 하는 맘에 문밖을 쳐다보고 또 쳐다봐도 그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그 녀석은 영영 오지 않았다.
지금 난 그 녀석이 어떤지 궁금하고 많이 보고 싶다.
차라리 덫을 놓고 잡아서 병원 치료를 했어야 했는데 하는 미련이 내 가슴 한 켠에 신경통처럼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