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5모 그리고 카네이션 또는 카네이션과 고통, 그리고 나
오늘은 5월 모의고사를 쳤다. 망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망할 줄은 몰랐다.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시험은 결국 실력을 판단하는 도구이고, 그 속에서 내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자만하고 있었다. 노력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시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실력은 정직하게 드러나고, 그것은 오직 노력에 비례한다. 선생님들은 늘 말했다. “공부는 노력만큼 결과가 나와.” 그 말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렸지만,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고3이 된 지금, 그 말이 뼈에 사무치게 와닿는다. 아마 이것이 나이를 먹고, 삶의 무게를 조금씩 체감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요즘 내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고통”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 그 안에서 나는 묻는다.
“나의 고통은 어떤 의미일까?”
“공부가 안 되는 이유는 나의 의지력이 예전보다 약해진 탓일까?”
매일매일 깊이가 다른 수심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으며 신에게 빈다. 그런데 또 누군가가 말했다. “고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이 고통의 농도를 이겨내며 살아가야 한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오늘은 어버이날이었다. 카네이션을 사기 위해 다이소에 갔다. 꽃집은 너무 비쌌고, 머릿속 어딘가에 ‘다이소에도 카네이션이 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엔 다 팔린 줄 알고 실망했지만, 구석에 남은 꽃들이 있었다. 다 시든 카네이션, 아직 피지 못한 카네이션. 각각 다른 모습이었지만 모두 똑같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5,000원.
그 풍경이 왠지 가슴을 아리게 했다.
피지 못한 카네이션은 아직 기회를 기다리는 것 같았고, 시든 카네이션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지 못해 서러운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카네이션을 보며, 내가 지나쳐 온 기회들과 운명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결국 아직 피지 않은 카네이션을 골랐다. 기대와 설렘을 담아서.
참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지금 내 전 재산은 5,000원. 다 시든 카네이션을 살까 잠시 고민했지만, 음료수가 더 끌렸다. 그렇게 선택에서 밀려난 꽃들은 마음 한켠에 계속 남았다. 걸어가는 내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나’ 싶었다. 불쌍하고, 아깝고,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작 다 핀 꽃은 결국 흙의 양분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사라지듯 소비되고,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시들어간다. 그것은 삶이 아닌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양이 다르다. 그만큼 피어나는 시기도 다르고, 열매를 맺는 시기도 다르다. 부모님조차 자식이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르고, 나 자신조차도 알 수 없다.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나도, 부모님도.
식물은 열매를 맺기 위해 결국 자신이 피웠던 꽃을 버린다. 그건 쓸모를 다한 것들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한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공부도 그렇다. 정신적인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만 꿈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 열매조차도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양분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양분’은 무엇일까? 단순한 경험? 아니면 흙처럼 복합적인 무언가?
나는 그게 바로 각자의 공부량이자, 살아온 시간 속에서 쌓인 경험의 무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