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배경음악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자신이 들었던 음악만 반복해서 듣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뜨끔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항상 성시경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다정함'이라는 단어를 목소리로 만든다면 그건 분명 성시경일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다 "사랑한다"는 말로 들릴 것만 같은 목소리. 내 삶의 배경음악은 언제나 성시경이었다.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때는 마치 분위기 좋은 카페에 있는 것처럼, 집안일도 로맨틱한 일상으로 변화시켜 주는 노동요처럼, 마트 가는 길도 드라이브처럼 달달한 기분을 만들어 주던 노래. 세상 어딘가에 꼭 이런 목소리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 거란 착각을 하게 해주는 그래서 몽글한 사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노래들.
"지금 곁에서"
"이윽고 내가"
"별일 없니"
단 몇 음절만으로 마음을 들썽이게 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잘자요"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밤을 잠들지 못했는지. 나의 20대와 30대는 그가 불러주던 노래들과 함께 지나갔다. 사랑에 웃고, 이별에 처량하게 슬퍼하면서. 그 다정한 목소리에 기대어 더 좋은 사랑을 꿈꾸던 날들이 많았다. 성시경을 좋아하게 된 건 분명 목소리 때문이었지만 같이 나이가 드는 처지가 되고 보니 음악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좋아 노래를 더 즐겨 듣게 되었다.
성시경 콘서트를 갔을 때 멋진 몸을 포기하고 깨끗한 성대를 지켰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솔직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가수들은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 콘서트를 앞두고 극한 다이어트를 감행하지만 자신은 성대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금연과 금주를 선택하는 대신 스트레스로 인해 야식을 즐긴 결과로 불어난 몸은 여러분이 감당해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타인에게 있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당당할 수 있으며 늘 최선을 다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모습,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슬픈 이별을 겪은 사람이 되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이별의 애절함을 떠올렸겠냐며, 희재를 목놓아 부르던 모습이 참 빛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즐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또 다른 무언가를 포기할 줄도 아는 모습. 지금의 성시경은 그런 노력의 행보가 이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기에 데뷔보다 조금은 몸이 불었고 아저씨스러움이 묻어있는 외형마저도 좋아 보였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성시경의 모습은 단편적인 일부분일지도 모르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에 최선을 다하려는 삶의 자세가 좋다고 생각한다. 글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언젠가 음악에서는 음표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이 모두 종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악보에서 아무 소리 없이 쉬는 부분도 소리가 나는 부분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아무 소리가 없는 부분이 소리 나는 부분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음을 내기 위해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는 부분이 있어야 이어지는 음의 소리가 더 빛날 수 있다니. 정해진 박자의 길이만큼 정확히 쉬어주어야 아름다운 곡이 완성되는 음악을 들으며 쉼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쉼표'와 '아무 소리 없음'이 해내고 있는 역할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연을 하는 중이나 쉬는 기간도 상관없이 매일 일정량의 연습을 실전처럼 반복하고 있다. 연주를 하는 손이나 성대가 하루라도 녹슬지 않도록. 그런 매일의 노력들이 쌓여 음악이 필요한 순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다. 악기를 만드는 나무 또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서 비와 바람을 맞고서도 튼튼한 뿌리를 내린 나무만이 좋은 울림통을 가질 수 있고 가장 깊은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악기는 세월의 흔적을 덧입고 오래도록 길들여온 것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오래된 악기, 오랜 시간을 사랑받는 음악을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오랜 세월을 버티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글이, 나의 삶이 그런 아름다움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배경음악처럼 함께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서정적인 연주가 어울리는 사람, 빠른 비트와 템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 특별히 슬픈 느낌이 묻어 있는 사람, 그리고 가사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 같은 사람까지. 그러고 보면 내가 성시경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색감의 감성을 가진 삶이 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부드럽고 다정한 음악처럼 나의 일상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 나를 떠올릴 때 어떤 음악을 생각하게 될까? 나는 내가 언제 들어도 편안한 마음을 주는 배경음악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빛바랜 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듯 나의 지나온 삶의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이 있어서 참 좋다. 선율만으로도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다는 게 아마도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앞으로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또 어떤 음악들이 추가될지 궁금해진다.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음악이 있나요?
우리 삶의 배경 음악이 좋은 곡들로 채워져 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