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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날들 Dec 09. 2024

숨은 마음 찾기

그림을 보며 마음을 읽는 일


만약 고흐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그 사람 옆에서 하루 종일 그림을 감상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벅찬 마음으로 고흐의 그림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시대를 거슬러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을 볼 때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 시절의 화가 곁에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럼 그림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림 안에 어떤 마음들이 담겨있는지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말문이 턱 막히게 하는 그림을 볼 때, 마음을 비집고 자꾸만 올라오는 감정을 도저히 누를 수 없는 작품을 만날 때,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의 세계는 너무 어렵지만 어려운 만큼 흥미롭다.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처럼 캔버스 안을 채우는 선과 면 그리고 다양한 색감을 더듬거리듯 헤아려보는 시간이 좋다. 그림으로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해석은 언제나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 마음껏 자유롭게 그림을 느껴보고 내 삶을 덧입혀 나만의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처음 보는 그림 앞에서 언젠가 꺼내보고 싶었던 내 안의 어떤 마음을 찾게 될 때 느껴지는 전율도 참 좋다. 


마음을 선과 면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색감으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슬픔의 감정과 환희의 순간을 한 장면으로 포작 할 수 있다는 것도, 여린 선부터 굵고 힘 있는 선과 약한 빛에서 짙은 어둠까지 다양한 색들이 섞이는 농도에 따라 수만 가지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도 그림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경이로움 같다. 종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가장 신비로운 일. 구도에 따라 같은 장면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보는 사람에 따라 똑같은 그림을 슬프게도, 기쁘게도 볼 수 있다는 점도 참 재미있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전문적인 식견은 없지만 마치 점자를 더듬거리듯,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림 안에 숨겨있는 화가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일이 좋다. 


가끔씩 마음이 복닥일 때 전시회를 간다. 누군가 그려놓은 그림에 담긴 마음을 읽다 보면 안개의 숲 같았던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고 투명해진다. 마음을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 그림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인 것 같다. 그림에는 보는 사람의 마음이 보태어진다. 슬픈 마음으로 보면 똑같은 그림에도 슬픔이 번진다. 사랑에 빠진 마음으로 보면 애잔한 상실의 그림에서도 사랑을 읽을 수 있다.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게 꼭 우리 인생과 닮아있는 것 같다. 누군가 답을 정해놓은 것 같아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림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정반대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도 있다. 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어떤 시대에는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오랜 세월 끝 누군가에 의해 그 진가가 발견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그 안에 담긴 화가 개인의 삶 혹은 그 시대의 슬픔과 기쁨, 아픔이 전해진다. 그리고 세월을 덧입어 오래도록 더 깊고 진한 이야기들을 쌓아가게 된다. 


작은 캔버스 위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진다. 그 무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수많은 인생과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숨겨진 이야기를 보물찾기 하듯 상상력을 더해 읽어내다 보면 내 안에 새로운 빛깔이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메마르고 바스락 거리는 기분이 들 때 그림을 보면 마음에 온기가 스며든다. 그림으로 말을 걸어오는 화가의 마음에 화답하고 싶어 자꾸만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차오른다. 어떤 날은 좋은 영감으로, 또 어떤 날은 다감한 위로로 또 어떤 날은 묵혀두었던 애틋한 서글픔이 터진다. 랍에 칸칸이 넣어두었던 마음들이 그림을 보며 위로받고, 채워지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림을 보다 보면 흐릿했던 내 마음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일이 즐겁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 

그림으로 말을 걸어오는 화가의 마음에 답하며 내 안에 깊이 잠들어 있는 마음들을 꺼내보고 싶다.

그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려나.

그림 옆에 조용히 내 마음을 걸어두고 온다. 

부디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곳에 잘 도착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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