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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날들 Dec 16. 2024

살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마음의 방 청소

해도 해도 끝이 없고 한 일은 티가 안 나지만 하지 않으면 무진장 티가 나는 일. 그게 바로 살림이다. 나는 대체로 부지런하고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살림만은 정말 어림도 없다는 걸 매일 절감한다. 물건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집안의 물건들은 어쩜 그렇게 하나같이 제자리를 이탈해 예상치 못한 곳에 드러누워있는지. 정리와는 담을 쌓고 있는 누군가와 살고 있거나, 각종 장난감이 집안을 장악하는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깨끗한 정리 정돈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도 쌓이면 얼마나 위해한 힘을 발휘하는지. 미리미리 치워두지 않으면 집은 금방이라도 재난 수준을 맞이할 것이고 뒤늦은 깨달음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온다는 것을 환절기마다 온몸으로 호되게 체감한다. 


잘 빨고 말려 보송해진 수건과 물방울 자국이 없는 수전, 간결하게 정리되어 색깔별로 서랍에 착착 넣어있는 속옷과 양말, 하얀 침구와 가지런한 모든 것들. 물건들이 각자 있어야 할 제자리에 간결히 있는 풍경이 주는 위안이 있다. 나의 배경을, 일상을 정리 정돈해 놓으면 마음과 생각이 산란해지는 순간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어느 쪽으로 가고 싶은지 마음과 생각이 헝클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주변이 간결하면 마음과 생각도 그 길을 따라 정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루한 일상을 매일 반복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매일 내가 머무는 공간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한 내 몫이다. 그것은 단순한 주변 정리의 의미가 아니라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스스로가 알고 있는 '나'를 가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루한 반복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습관은 결국 성실함과 꾸준함 그리고 내면의 질서를 가져다준다.   


삶은 늘 예측불가능하고 여기저기 지뢰밭이 난무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문제가 빼꼼히 얼굴을 드민다. 그러니 마음이라도 늘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세계의 질서가 필요하고, 내면의 질서는 대체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될 때가 많다. 작은 물건이라도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헝클어지기 시작하면 마음에도 먼지가 쌓이게 된다. 엉망으로 놓여있는 물건들은 뒤엉킨 생각을 가져오고 결국 산란한 마음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공간은 그곳을 머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투영한다. 그러므로 내가 머문 공간의 모습이 나의 진짜 민낯일 수 있다. 


가끔 아이들이 묻는다. 

"엄마, 내일 또 가지고 놀건데 꼭 제자리에 넣어두어야 해요?"

그럼 내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응. 장난감들도 저녁엔 자기 자리에서 쉬고 싶을 거야."

"귀찮은데 내일 하면 안 돼요?"

"귀찮은 일도 꾸준히 해내야 진짜 이루고 싶은 걸 이룰 수 있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며 깨끗하게 정돈된 것들이 주는 위안. 아마도 복잡한 세상 속 더 복잡한 내면을 다스리며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물건들을 정리해 두면 필요할 때 시간 소모 없이 착착 찾아내서 쓸 수 있듯이 생각과 마음도 정돈해 두면 위기가 찾아올 때, 흔들릴 때, 필요한 생각과 마음을 쉽게 꺼내 쓸 수 있다. 마음에 쓸데없는 근심을 쌓아두면 작은 바람에도 인생이 쉽게 흔들리게 된다. 그러니 귀찮다고 내버려두다 우울함 같은 먼지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마음도 틈나는 대로 정리하고 청소를 해야한다. 살림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셀프케어로 스스로를 돌보는 일 중 가장 티가 안 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일. 내가 머물렀던 공간을 깨끗하게 정돈하며 마음과 생각도 제자리에 넣어두는 연습을 한다. 내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나의 삶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떠한 순간이 찾아와도 흔들림 없이 내 길을 걷게 해주는 건 이렇듯 작고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 태도이다.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삶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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