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안이'에게
지도를 읽지 못하고 겁도 많으며 세상 쫄보에 방향 기능을 상실한 사람.
처음 가는 길은 머릿속에서 지도를 통째로 외워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해봐야 하고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얼음이 되어 덜덜 떨며 가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방향 감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싶은 나는 초보운전만 10년째이다. 운전은 왜 아무리 해도 늘지 않고 할 때마다 새롭고 어려운 것일까? 운전대만 잡으면 온몸의 신경 세포가 다 곤두선 느낌이다. 단거리 운전에도 어깨 통증을 호소할 만큼 긴장하고 자주 걸어서 다니던 거리도 운전하면 마법처럼 낯선 길이 돼버린다. 뒷좌석 카시트에 아이들이라도 태우는 날이면 초긴장모드로 돌입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와 몸살을 앓는다. 직업의 특성상 근무지가 주기적으로 변동되는 나에게 운전은 늘 어려운 과제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업무, 새로운 선생님과 학생들도 부담이지만 낯선 근무지의 출퇴근 운전이 가장 난코스이다. 새로운 발령지가 정해지면 내비게이션을 켜고 방학 내내 도로연수를 해야 하고 출퇴근길이 제법 익숙해졌다 싶을 땐 다시 새로운 학교로 떠나야 하는 초보운전자의 슬픔을 아시는지.
도로 위에 저 많은 자동차들은 어떻게 제 길을 알고 저렇게 잘 가는 걸까?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발달했다고 해도 도통 지도를 읽지 못하는 나는 그러니까 500m가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잠시 후 좌회전이라는 게 정확이 언제이며 그래서 지금은 몇 차선을 유지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후방 카메라가 있어도 양 옆의 차 간격을 예상해 핸들을 언제 몇 바퀴 돌려야 하는지가 몸에 익기까지 수학 공식을 외우듯 각도와 방향을 조절해 외워야 한다. 몸을 한 바퀴 돌리면 동서남북과 왼쪽 오른쪽도 헷갈리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한다. 타고난 몸치가 현란한 댄스 동작을 익히기 위해 초단위로 안무를 쪼개고 외워서 공연을 하듯이 가야 할 길을 통째로 외우고 언제부터 차선 변경을 미리 해놓아야 하는지까지 예측해 기어이 운전을 한다. 그럼 뭐 어떠한가. 초보운전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고, 아이들 병원과 가까운 마트 정도 갈 수 있으면 됐지.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젠가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드라이브를 하면 마음이 좀 풀린다는 그 느낌이 어떠한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다. <텐트 밖은 이탈리아>에서 좁디좁은 도로도 거침없이 운전하던 여배우처럼 언젠가 해외여행을 가도 운전쯤이야 하는 경지에 이르러 보고 싶다.
나는 왜 만년 초보운전 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 나의 오래된 불안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럴만한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나의 성향 중 하나인 것 같다. 어떤 일이든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그래서 대부분의 일들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약속에 10분이라도 늦을까 걱정이 돼서 늘 20분은 넉넉히 여유를 두고 도착해야 하고 플랜 A, B를 넘어 어떤 일은 플랜 Z까지 준비해두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엔 하교하자마자 집 현관 입구에 쪼그려 앉아 그날의 숙제를 다 끝내고서야 마음 편히 놀았고, 혹시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주렁주렁 넣어 다니느라 가방은 언제나 보부상 저리 가라 크기를 자랑한다. 유년시절 한 번도 결석해 본 적이 없고(결석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사람이 선생님이 되어 출근도 1등으로 합니다.) 여행을 가도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 만약의 상황까지 대비해 놓아야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으며, 세상 어느 곳보다 우리 집 내 방이 제일 아늑하고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처음엔 이토록 불안이 높은 내가 싫어서 일부러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놓기도 하고, 될 대로 대라 식의 상황을 이겨내 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그 불안이 나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준다. 나를 돌봐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해 준다. 유난히 예민해지는 날은 잠도 푹 재우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이고 불안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만의 안전지대에 충분히 머물 수 있게 해 준다. 남들보다 걱정이 많아서 되려 좋은 점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보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고, 타인의 감정도 민감하게 살필 수 있어서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다.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두다 보니 급한 일이 생겨도 차분히 처리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어떤 일을 해도 충분히 생각하고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니 후회가 적은 편이다.
운전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나의 불안에 대해서. 내 안에 있는 '불안이'는 내가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주저앉음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한때는 그 불안이 너무 싫었고 그런 나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마치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벽 같았고 늘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나를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불안이'를 잘 어르고 달래서 함께 걷는 방법을 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앞에 억지로 등을 떠밀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만큼씩 나를 격려하며 걷는다. 대차고 용기 있는 성격이 아님을 자책하지 않는다. 불안해서 준비성이 철저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 안아준다. 10년째 만년 초보여도 갈 수 있는 곳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으니 일상의 작은 성공을 경험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고 못하는 일이 있다는 건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기회이다.
나의 '불안이'를 데리고 사는 일은 그렇다. 목적지까지 친절한 안내가 있어도 운전이 두려운데, 모범답안이 없는 인생은 오죽할까 싶지만 조금 아쉽고 답답하더라도 나만의 방향을 정해 나만의 속도대로 깊어지고 넓어진다. 낯가림이 심한 나의 '불안이'가 '용기'와 친해지는 만큼씩 부딪히고 해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음에 만족한다. 한때는 내 삶의 모든 것을 대비하고 계획하려는 소위 컨트롤 프릭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예측하지 않고 흘러가는 삶이 주는 유익에도 순응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갈 수 있는 정도의 운전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불안해하는 성향 자체가 완전히 바뀌지 않겠지만 흔들리는 삶 속에 숨겨져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나는 아마 오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초보운전에 겁쟁이에 '불안이'를 끌어안고 사는 삶일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있을 테니 괜찮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나고,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 애정하게 되는 나를 평생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 하루만큼씩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쌓여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불안이'를 잘 달래서 나만의 의미를 지닌 하루를 채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