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삼시 세 끼를 먹어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한 번쯤 해본 적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방학이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일 확률이 높다. 돌밥, 삼식이의 무게를 아는 주부에게 요리는 어떤 의미일까? 결혼 10년 차가 되면 집밥 정도는 눈감고도 뚝딱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침엔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저녁엔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는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 그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음을 일하는 엄마가 되고서야 알았다. 아침마다 맛있는 찌개를 끓이기 위해서 잠을 줄여야 하고 저녁에 따뜻한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편의 퇴근이 빨라야 한다. 매일 따뜻한 국과 서너 가지 반찬이 있는 식탁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던지. 어느새 나에게 요리는 맛있는 일상이라기보다 해야 하는 집안일 중 하나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어떤 요리를 하든 재료 준비를 위한 밑작업이 필요하고 그러한 준비에는 일단 시간적 여유와 부지런함, 인내 혹은 기어이 먹고자 하는 식욕이 필요하다. 먼저 기본 재료 손질, 여기서부터 지친다.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면 예쁜 요리를 뚝딱 만드는 분들이 너무 많지만 실제로 재료 손질에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많은 재료가 모두 냉장고에 늘상 있지도 않고 어쩌다 새로 사두면 일주일 내내 그것이 들어간 음식만 먹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퇴근 후 아이 둘을 혼자 씻기고 집안을 정리하고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어야 하는 나에게는 일단 시간적 여유가 없고 부지런함은 매번 사용량 초과로 바닥이 나고 식욕은 수면욕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므로 정성을 필요로 하는 요리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늘 그림의 떡이었다.
그리고 요리에 대한 기본자세. 일단 맞벌이 부부에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은 가성비가 떨어진다. 음식을 만드는 중간에 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이미 다른 간식으로 배를 채워버리거나 또 다른 집안일에 밀려 요리가 완성 근처에도 못 가는 일이 허다하다. 아이들 식사는 완벽하게 완성이 됐다고 해도 이미 바닥난 체력에 '나는 그냥 대충 먹어야지'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게 됐던지. 왜 어머니들은 실컷 요리를 만들어놓고 보리차에 밥을 말아 드셨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기어이 먹고자 하는 식욕. 요리를 만들고 나면 너덜너널 해진 체력을 식욕이 이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요리를 하다 방전된 몸은 먹고 싶다는 욕구를 너무 쉽게 상실했다. 그러니까 나의 하루 식사를 정리해 보자면 아침엔 전투 식량을 먹듯 허겁지겁 시간에 쫓겨 빵을 욱여넣고, 점심은 급식실에서 도깨비 시장 같은 소란스러움에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알 수가 없고, 저녁은 이미 지친 몸으로 간신히 아이들 밥을 차리고 남은 음식을 먹거나 그도 아니면 집안일을 다 마치고 식욕을 이기는 수면욕에 고꾸라져 잠드는 날이 많았다.
언제부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이 별로 즐겁지 않았다. 살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들을 채우는 간단한 알약만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사람처럼 평일의 식사는 별다른 기쁨이 없었고 주말엔 밀린 허기를 채우듯 점점 자극적인 배달 음식이나 외식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한 인터뷰에서 '엄마'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요즘 아이들은 "배달음식"이라고 적는다는 말을 들었다. 가히 충격적이고 씁쓸한 답이라고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왜 음식과 엄마가 연결되어야 하나요? 엄마는 요리까지 잘해야 하나요?'라고 비뚤어진 마음을 하소연하고 싶었다.
바쁘다 바빠 현대인의 삶에서 요리는 어떤 의미일까? 배달과 외식이 다반사가 되기 이전의 삶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요리에는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었고 그래서 아이들의 정서 한편에는 늘 따뜻하고 배부른 사랑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요리를 만드는 것보다 한 끼 사 먹는 것이 가성비 있을 때가 많고 바쁜 엄마에게 삼시세끼 집밥을 요구한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을까. 간편식과 밀키트의 홍수에서 '요리'는 그 의미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누군가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정성, 따뜻한 대접이 담겨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끼니의 때움일까? 문득 내 아이에게 한 끼의 식사가 대충 때우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그래서 내가 하게 된 결심은 한 끼 식사에 정성을 담는 일이다. 엄청난 요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가 먹는 식사를 예쁜 그릇에 담아주거나 한 가지 음식이라도 꼭 따뜻하게 만들어주려 애쓴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며 대접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비록 미역국과 카레를 한솥 끓여 냉동실에 쟁여두고 데워주게 될지라도 이 한 끼가 내 아이의 하루를 든든하게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꾹꾹 채워 담는다. 나는 흑백요리사가 아니고 생존 요리사니까. 모든 음식을 특별하게 잘 만들 필요가 없다. 다만 내 아이의 정서에 배부르고 따뜻한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 딱 한 가지 엄마의 시그니처 음식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요리 실력을 연마 중이다. 혼자서 아프고 서러운 어떤 날, 살다가 문득 삶이 허기가 지는 날,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음식. 엄마가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들어주던 그 기억이 떠올라 혼자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따뜻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정성스러운 음식을 대접한다. 요리를 하는 일은 여전히 숙제 같은 집안일 중의 하나이지만 스스로를 소중히 대하는 마음을 담아 나의 한 끼에도 정성을 담는다. 그저 과일 하나, 빵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내는 일이더라도 이 음식을 먹고 허기진 하루가 아닌 따뜻하고 배부른 하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건 손쉽게 만들지만 맛도 있고 영양가도 있는 그릭요거트이다. 요거트 제조기를 사서 유청을 제거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나를 위해 기꺼이 감당해 준다. 요리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나를 위해 5성급 호텔 셰프가 음식을 준비하듯 정성을 담아 대접한다. 거창하고 화려한 요리가 아니어도 계란 프라이 하나 데친 두부 한 조각을 먹는 일이더라도 정성이 들어가면 이미 충분히 멋진 요리가 아닌가. 그 정성이 마음에 닿는 다면 분명 행복을 데리고 올 테니까.
바쁜 현대 사회에서 정성이 담긴 요리를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삼시 세 끼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정성이 담겨있다. 단순한 허기의 때움이 아닌 정성을 먹는 일. 그 따뜻한 마음이 우리 안에 채워지면 행복이 된다. 그러니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혼자서 간단히 때우는 한 끼가 되더라도 귀빈을 대하듯 정성을 담아 대접하고 그 음식을 먹는 순간만이라도 소중한 사람이 된 느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으면. 그래서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다른 사람을 아끼는 마음으로 번지고, 그 마음이 다시 나에게 사랑으로 다정히 스며드는 하루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