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 이따금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내용은 한국은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는 제대로 된 보상이나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 이런 처사가 있는 경우들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가해자나, 잘못을 한 사람은 쉽게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는 나라도 한국이라고 생각한다.
유명인들이 쉽게 '나락'을 가는 경우가 유독 심하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한 사람은 사형제도가 없지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밟아 버리려 하는 나라도 한국이다. 도덕적인 문제가 그렇고 만약 그것이 법적 문제와 연결된다면 더 심해진다. 사람의 생명을 뺏는 살인 보다 성범죄자가 더 심각한 죄로 인식되는 정서가 있으며, 그것은 재기불능, 사회적으로 사형된다. 차라리 사형시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각설하고 우연히 뜬 알고리즘에 의해 보게 된 [강변의 무코리타]라는 영화가 있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한 전과자가 출소 뒤에 직장에 출근하게 되고 한 집에 월세로 살게 된다. 출소자에 대한 한국의 처사가 어떠한지는 알 수 없지만, 출소한 영화의 주인공은 나라에서 직장과 살 곳을 연결받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상당히 좋은 복지라 생각한다.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간다면 그 좋은 대학의 교육, 시설,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것에서 끝나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 또 다른 평가의 기준으로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어떤 사람이 교도소에서 자신의 형량을 채우고 나왔다면 그 사람은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세상이 돕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번의 대학의 결정이 평생을 가고, 한 번의 심판이 영원을 결정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교도소의 기능이 교정을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만약 교도소가 그런 교정의 기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 교정을 포기하는 건 옳지 못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살려 두는가? 필자는 부드러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만약 그런 교정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희박하거나, 불가능성을 주장한다면 죄인에 대한 사형제도를 살려내야 하고 더 자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꿈꾼다.
일본은 죄책감을 쉽게 떨쳐 버리는 사회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학창 시절 학폭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잘 없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문제를 지나가게 한다. 물론 이런 부분에도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문제가 있지만,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죄책감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가지고 있지 않는다. 한국과의 역사문제에 대한 사과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그의 이웃도 과거에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
유골이 참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아버지의 유골이 계속 등장하고, 집주인의 남편의 유골도 등장한다. 유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유골을 결국에 바람에 날린다. 집주인은 먹어도 보고 자위도 해본다. 그리고 죽은 자를 위한 비석을 파는 이웃과 그의 어린 아들.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들은 끝내 예정에 없던 주인공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자신들이 가진 죽음도 떠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