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가 갑작스럽게 떠나고 집에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성북동 > 성북구에서 20년을 넘게 살았다.
어느 날 엄마가 성북구 집을 전세로 놓고 경기도 오피스텔에 살자고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 갭투자를 할 건데 우리가 투자할 집에 잠깐 거주하다가 다시 성북구로 돌아가자고,
그렇게 경기도 신축 오피스텔 1301호, 1302호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1301호에서 강의를 녹화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나는 1302호에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렴풋한 자취를 경험해 보는 걸로
그렇게 바로 옆집에 부모님이 있는 상태로 나의 첫 자취가 시작되었다.
이사 온 집에 짐을 풀고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정신이 없었지만 너무 즐거웠다
20년 만의 첫 이사, 즐거운 제주도 여행..
난 이제 어른이구나!
서울에서 자격증 신청을 했기에
제주도 여행이 끝나고 다시 서울로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갔던 날
딱 하루 신축 오피스텔 집을 비웠던 날
아빠는 신축 오피스텔 복층에서 혼자 심장이 멈추어버렸고
갭투자 성공이라는 부푼 마음으로 이사를 온 경기도 오산은
순식간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온 친척을 오산 장례식장으로 불러야 했던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1301호의 문을 열 자신이 없었다.
아빠가 자는 줄 알고 1301호의 불만 꺼주고 온 무심한 딸이 1302호에서 무슨 정신으로 견딜까
바로 옆집에 아빠가 있어야 하는데..
그때 자격증 시험 보러 서울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엄마 역시도 그날 출장을 가지 않았더라면..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 가지 않았더라면...
원래 살던 성북구에 있었다면 아빠가 쓰러져도 바로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로 엄마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 불리던 엄마는 장례식장 내내 미망인이라고 불렸고,
점점 수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손이 너무 떨려서 운전도 할 수 없게 되었고 후회만 남기게 된 신축 오피스텔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은퇴할 나이가 되면 수입이 없으니, 미래를 위한 투자로 구입한 신축 오피스텔이었는데
엄마가 정신을 놓아버리니 6개월 넘게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않는 것도 체크하지 못하고,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고
아빠의 죽음이 도미노처럼 온갖 불행을 파도 타게 했다
엄마가 충격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수입이 줄어들고
취업은 늦어지고
어찌 됐든 당장의 선택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선택지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빠가 떠난 경기도 신축 오피스텔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
1301호뿐만 아니라 1302호도 팔자
당장 갈 곳이 없으면 고시원에라도 머물면서 서울에 취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서 전세대출받고 당장 월 150 이상 꾸준히 버는 게 시급했기에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회복탄력성은 내가 더 높은 듯 하니, 나라도 얼른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엄마는 뒷전이었다
내가 아빠 옆에 있어서 심폐소생술에 성공했더라면
엄마가 미망인이 되지 않았을 텐데.. 엄마를 보면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기에
황망함에 모든 걸 놓아버린 엄마를 지켜주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었다.
엄마는 당장 울산에 있는 이모네에서 마음을 추스리기로 했다.
오빠는 원래대로 자취를 지속하며 열심히 일을 했고
나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울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걸 놓아버리고 오피스텔 5채 갭투자에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엄마를 두고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4평 짜리 임시 자취방..
반지하 곰팡이 제거 작업 및 도배까지 2주가 걸려서 임시로 머물 곳이 필요했는데
너무 좁아서 정말 잠만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