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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Jul 01. 2024

36층에서 -1층으로

갑자기 이사를 간다고?



부자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부자서울에 살면서 가족 구성원이 모두 월세 안 내는 형편의 사람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자였다고 생각했다.


대저택도 아니고, 명문대도 아니지만 서울에서 한평생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10분 거리의 대학교를 걸어서 다니는.. 나는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대기업 취업은 어렵겠지만, 학자금 대출도 없으니 무리해서 급하게 취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졸업하면 유럽 여행 한번 갔다가 그냥 친척 회사에 들어가서 천천히 사회 경험 쌓아도 되겠지~


학자금과 자취비용이 없으니, 마이너스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여유 있게 사회생활을 시작해도 된다고 믿던.. 현실성도 없고 철도 없던 학생이었다.


갭투자 열풍이 불면서 어머니가 영끌로 경기도 오피스텔을 5채나 구매하며 생활이 조금 빠듯해지긴 했지만, 가족들 모두 1인분 몫을 해내고 있었고 중산층에서 한 계단 정도는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다들 신나게 일했던 2021년이었다.


성북구에서 학교를 통학하고, 주말마다 용산 호텔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우리 가족


아버지가 심부전 판정을 받은 뒤에 병원에서 스트레칭과 마사지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용산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에서 주말마다 사우나와 마사지 코스를 잘 사용했고 그것이 비싼 거주지가 제공하는 타당하고 세련된 복지라고 생각하며 맘껏 활용하던 때였다.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는 건 안다, 그렇지만 절대로 가난해지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4인 가족 모두 일하고 있었고, 나는 비록 알바만 해봤지만 졸업하면 취업할 거고

부모님을 부양하진 않아도 되니까 부담 없고 과소비하는 습관도 없으니까 난 절대로 가난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가족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심장이 멈추고


어머니가 그 충격으로 모든 일을 다 놓아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머니는 사업을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일을 멈추는 순간 수입은 제로가 된다.


그리고 출장 겸 여행으로 아빠를 두고 떠나 있던 그때를 후회하며 갭투자했던 오피스텔 5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확인하니 세입자들의 월세 미납이 보증금을 넘어서버렸다. 



부자의 기준을 바꿔야겠다. 부자는 3대를 이어가야 부자인 거 같다.

그리고 회복 탄력성이 좋아야 한다. 


졸업 후 유렵 여행은 건방진 생각이었다. 


명문대 나온 오빠가 성공적으로 연봉협상을 끝내는 것만으로는 

가장의 부재와 갭투자 실패를 회복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 도움 없이는 당장 서울에 보증금 낼 돈도 모아두지 않은 

경제관념 없는 24살의 꼬맹이만 남아있었다.



친구들은 어쩌면 고등학생 때부터 경험해야 했던,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부터 고민했어야 했던,


보증금과 월세, 통학 거리, 풀옵션 여부


어떻게든 싸고 좋은 집을 고르고 고르다,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조건의 집을 체념하고 계약해야 되는 그것


서울 자취가 시작되었다.



하기 싫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난 원래 서울 사람이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게 얼마나 꿀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엄마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게 현실이 맞는지?

이건 드라마에서나 보던 나쁜 사람이 겪는 말로가 아닌지..?


우리 가족이 무슨 업보를 쌓았나?

다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는데..


상황이 왜 두 달 만에 이렇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건 취업을 해야 했고, 서울에 집을 구해야 했다



아무 회사라도 일단 들어가서 엄마를 안심시키고, 아무 집이나 일단 구해서 출퇴근을 해야겠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단 하자! 는 다급한 신념은 


블랙기업과 반지하로 나를 초대했다






출처: 김정연 - 혼자를 기르는 법


자취방에서 혼자 읽고 웃펐던 만화의 한 장면


Jot 같더라도 사는 법


난 그렇게 jot 같아도 반지하에서 살아보기로 하였다.





바로 이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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