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친구가 말했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살림 꿀팁이 있다면?"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다행히도 왜 그런 걸 묻냐고 대답하는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
다들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듯, 지금은 힘들지만 지나갈 거라고 위로해 주듯 저마다의 시련을 이겨낸 이야기를 해주었다. 혼자 살 때 절대 우울해하지 마! 절대 배달음식 같은 걸로 대충 식사하지 마! 혼자여도 세련되게 잘 챙겨 먹고 홈트 열심히 해! 사랑은 가장 궂은 날에 찾아오는 법이야 등
(내가 그렇게 불쌍한 표정으로 물어봤나?)
일부러 숨긴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엄마를 뒤로 한 채 서울에 자취를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집주인밖에 모른다.
친한 친구들은 하나만 알거나, 하나도 모르거나
그런데 괜히 친구가 아니라고, "너 요즘 왜 이렇게 힘들어 보여? 살이 엄청 빠진 거 같은데." "되게.. 드디어 퍼킹 어른이 된 거 같다.(퍼킹 어른이란 직장인을 뜻함)" 따위의 말을 건네며 나름의 위로를 전해주곤 한다.
현재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모르는 오래된 친구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야"
친구는 내게 요즘 힘들어 보인다며 남자친구랑 잘 안 되고 있는 거 다 안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했다.
우선, 친구가 생각하는 그 남자친구와 나는 4년 전에 헤어졌는데 얘 완전 헛다리 짚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랑 때문에 힘들지 않은데..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다.
나는 왜 자꾸 공허하고 눈물이 날까?
친구 말이 반은 맞았다.
사랑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빠를 잃고 더는 사랑하는 가족이 없어졌다, 그렇게 느껴서 외롭고 힘들었다.
물론 엄마도 오빠도 친구들도 있지만 뭐랄까 팔 한쪽이 잘린 느낌이다.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다리도 있지만 팔이 새로 자라지 않아서 하루종일 잘린 팔만 쳐다보는 그런 느낌
그 어떤 이별보다 아프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 탓에 반지하에서 4인 가족을 그리워하며 한없이 우울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아빠가 있었기 때문에 버텨내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으로 쓰러졌지만 굳건히 일어서서 버티고 있는 엄마를 구하러 가야지
난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 모든 행운을 뺏긴 거 같아 억울했고 힘들었다.
앞으로 나에게 또 엄청난 행운이 찾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잘 꾸려나가보려 한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쓴 전기 요금을 처음 내봤다
하루 종일 제습기랑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10만 원가량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지하의 이 습기를 빼내야 하고 여기를 최대한 예쁘게 꾸며서 잘 살다가 나가려고 한다!
나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 하는 아빠의 사랑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