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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Jun 13. 2024

쓰러진 아빠와 멈춘 심장

인생이 후르츠 바스켓처럼


어릴 때 후르츠 바스켓이라는 만화를 참 재밌게 봤었다.


주인공 토오루라는 여자아이가 엄마를 잃고 텐트에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평소에 엄마랑 굉장히 친했던 토오루는 딱 하루, 쪽지시험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고 늦잠을 잔다.


엄마에게 '잘 다녀오세요~'라고 그날 딱 하루 인사하지 못했는데, 토오루의 엄마는 그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엄마와 아침인사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남은 토오루는 엄마에게 약속한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가 원했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라는 설정인데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참 순정만화같은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기구한 설정만 닮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후르츠 바스켓처럼 인생이 흘러가게 되었다.


엄마의 출장이 잦아지면서 거의 2년 동안 아빠와 단둘이서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매일 아빠와 이마트 마감 시간에 할인된 초밥을 사러 가고, 넷플릭스 시리즈도 보고, 아빠와 같이 일본어 자격증 시험 공부를 했다.


그리고 가장 날씨좋을 때 가족들끼리 제주도 유채꽃을 구경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참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오랜 제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일본어 자격증 시험을 보러 떠난 날이었다. 


- 딸~ 일본어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시험 화이팅!

- 응, 아빠 시험장소 좀 멀어서 근처 사는 친구 집에서 자고 아침에 시험보러 갈게~ 혼자서 저녁 드셔요!


너무나도 안정적인 일상이었다.  


졸업하는 날이었고, 열심히 준비한만큼 시험에 합격할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시험장에 무사히 잘 왔다고 오늘 저녁도 이마트에서 초밥 사서 먹자고 아빠에게 보낸 문자에 1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의구심을 갖진 않았다.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가면 언제나처럼 아빠가 날 반겨줄 거니까


 


 

집에 와보니 아빠는 자고 있었다. 깨우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고 돌아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밀린 웹툰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빠 방에 불을 끄고, 시험 공부 하느라 못 봤던 웹툰을 정주행하며 잠이 들었다.



유난히 오래 잤던 그 날, 분명 아빠가 날 깨워줄 때가 됐는데..


산책 가셨나..



그리고 깨달았다. 아빠가 어제 잠든 그 자세 그대로 깨지 않고 있다는 걸..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뭐지? 의사가 약물치료 효과가 아주 잘 듣고 있다고 했는데? 아빠가 이렇게까지 늦잠을 자나?'


'설마 .. 설마.. '


가까이 다가가서 본 아빠는 눈을 뜨고 숨이 막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심장이 멈추게 될 줄 몰랐다는 듯, 너무나도 놀란 표정으로. 평온히 잠든 표정이 아니라..


아직 떠나면 안 되는데, 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머리로는 사후 경과가 꽤나 지났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어쩌면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119에 연락을 했다.


전화를 걸자마자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 아빠가.. 아빠가 쓰러져있는데..

- 주소가 어떻게 되세요? 지금 알려드리는 방식대로 하세요

일단 젖꼭지 바로 위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세요 1,2,3 세드리겠습니다. 맞춰서 누르세요

- 아니요.. 이미 숨이 멈춘 거 같아요...

- 그건 일반인이 확정할 일이 아니니까 일단 심폐소생술 시작하세요, 아버지 안 살릴 거예요?


아버지 안 살릴 거예요?

아버지 안 살릴 거예요?


심폐소생술을 시키는대로 해야하는데


아빠의 몸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도저히 눌려지지 않았다.



119에 전화를 할 게 아니었다. 늦잠자고 일어나서 아빠의 방을 열자마자 알았다.


어제 아빠는 잠들고 있던 게 아니구나, 쓰러져있던 거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옆방에서 밀린 웹툰이나 보면서 낄낄 거리다 이제와서 119에 신고를 했구나.



응급 요원들이 집으로 출동했고, 아빠를 보자마자 빠르게 뛰던 걸음을 멈추었다.

뛰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아는 것처럼


뒤늦게 경찰이 와서 범죄 연루 가능성은 없는지 최초 발견자인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나는 현장 서술을 하러 따로 불려가야만 했다.


늘 먹던 초밥을 같이 먹지 않았던 그날,

일본어 시험을 보기 위해 친구 집에서 하숙했던 그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지 못한 그날 


나는 아빠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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