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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Jun 12. 2024

아빠가 자다가 심장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심부전의 시작, 무서운 유전



착하고 다정한 우리 아빠


한 번만 본 사람도, 열 번을 본 사람도, 십 년을 본 사람도 한결같이 말하는 우리 아빠는 '좋으신 분'


아빠가 초등학생일 때 협심증으로 쓰러졌다는 할머니는 병원 이송이 늦어져 뇌 한쪽이 다치셨다고 들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어,..어,서.와' 떠듬떠듬 말하는 할머니의 굳은 혀가 기억난다.


아빠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 오면 아픈 엄마를 보면서, '나는 아프게 되면 가족들 고생시키지 않게 빨리 떠나야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심처럼 아빠는 즐겁게 가족여행을 하고 돌아와 잠이 들 듯 떠나버렸다.


아빠는 영면하기 1년 전, 오랜 취미였던 등산도 멈추고, 좋아하던 술자리도 끊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부여잡았다.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동네를 걷기만 해도 헉헉거리기 시작하고 3층까지 계단으로 올랐다간 심장이 너무 뛰어서 5분 넘게 쉬었다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늘 가던 병원은 10년 전에 폐에 물이 차서 그 후유증이라고 진단했고, 코로나가 막 유행하던 시점이라 병원 방문도 쉽지 않았다.


10년 전에 폐가 아팠다는 이유로 (암도 아니고) 계단도 못 걸음만큼 숨을 못 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빠는 178cm에 80kg로 건장한 체격에 이렇다 할 체중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큰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심장이 너무 뛰고 아파서 잠을 못 자는 날이 지속되고, 등산은커녕 화장실 갈 때도 숨이 헉헉 차니 이건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싶었다.


순간 협심증으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이 났고,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대학 병원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병원 홈페이지를 뒤적인 결과 고대 안암 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전형적인 심부전 환자 맥박입니다. 아직 젊으시고 심장 외에 다른 장기들은 건강하니 약물 치료로 호전될 거 같네요"



대학병원에 가기 전까지 아빠는 앉아 있다가도 숨이 차서 힘들어했으니, 심박출량이 40% 미만이었던 거 같다. 나중에 들었지만 사용 가능한 심장이 30%밖에 남지 않았다고 떠나기 전, 뒤늦게 큰아빠에게만 털어놨다고 한다.


초반 약물 치료의 효과는 굉장했다!


약을 바꾸고 심부전이라는 명확한 명칭을 알게 되어 그에 맞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니, 아빠는 다시 등산도 하게 될만큼 건강해졌고 술도 완전히 끊고 건강식만 챙겨 먹어 되려 이전보다 젊어보이기까지 했다


비교적 젊은 심부전 환자이고, 심장 외에 다른 부위들은 건강하기에 큰 문제 없을 거라던 의사의 말처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나아지던 그때, 가족들끼리 제주도 일주일 여행을 마치고 신나게 서울로 돌아온 그 날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왜 자꾸 이명이 들리지? 이제는 한 순간도 안 빼먹고 계속 들리네.. 그만 듣고 싶어"


 사용 가능한 심장이 30%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도 내색하지 않던 아빠가 버티다 못해 했던 말이었다.


- 요새 비행기 많이 타고 너무 신나게 놀아서 일시적으로 그런 거 아냐?

- 그런가, 하하

- 알바비 들어오면 보청기부터 사드려야겠네~



청각까지도 수명이 다했다는 걸 모른 채, 약물치료로 모든 게 나아지고 있다고 굳건히 믿은 어리석은 딸은 그렇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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