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도 증후군은 나를 어디까지 위로할 수 있을까
아빠가 떠나기 이틀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 집에 와서 아픈 엄마를 봐야하는 건 진짜 고역이야. 아빠는 30년 동안 아팠던 너의 할머니를 보면서 집에 가는게 두려웠어
- 너무 오래 아프면, 남은 가족들한테 상처를 주게 돼
조수석에 앉은 아빠에게 들은 대답이었다
제주도 바닷길을 코스로 아빠에게 운전 연수를 받던 도중이었다.
운전에 슬슬 자신감이 붙자, 노래도 틀게되고 아빠를 골프장에 모셔다 드릴 여유도 생겼기에 했던 질문이었다.
- 아빠, 이제 약물치료하면서 몸 괜찮아졌잖아. 대신 술은 다신 못 마시겠네? 약이랑 술 같이 먹으면 안 되니까 아쉽지?
- 그러면 '1000억 부자되고 유병장수하기 vs 건강한 거지로 단명하기' 뭐가 더 나을 거 같아?
아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골랐다
돈도 명예도 다 필요없이, 건강이라고
1000억을 쓰는 재미도, 술을 마시는 재미도 다 '건강'한 몸으로 즐겨야 행복한 것이라고
가난하지만 착하고 마음씨 고운 아빠의 가족들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키워내신 할머니, 후유증으로 말도 못 하는 아픈 아내를 간병한 할아버지, 졸업하자마자 어머니 수술비를 벌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던 큰 아빠..
소시민이지만 노력해서 좋은 대학을 입학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렇게 나름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인생들
하지만 절대적인 선(善)도 좌절시키는 압도적인 가족의 병
좋은 대학을 가도, 손주가 무사히 태어나도
입학식에도 돌잔치에도 오지 못할만큼 아픈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착한 아빠를 평생 힘들게 한 것이다.
아빠는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심부전 진단을 받은 그날부터, 쓰러지게 되면 우리에게 바로 발견되면 안 된다는 것을
골든타임을 놓쳐 심폐소생술을 했다가 뇌가 손상되고, 할머니처럼 후유증을 앓게 되면 내가 아빠와 똑같은 슬픔을 평생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걸
그래서 하필 엄마가 출장을 가서 없던 그날,
내가 자격증 시험 본다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던 그날
그렇게 혼자 아프다 떠나야 했는지
아빠의 말처럼 생각하면 되는 걸까
아픈 부모가 집에 있으면 평생 마음에 짐을 지고 살아야 하니까 잘된 거라고
열심히 벌어도 마이너스를 만드는 병원비를 아껴서 좋다고
그렇게 위로하면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서 119에 요청도 하지 못할만큼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오는 게 나아지는 걸까
친구가 최근에 고민을 털어놨었다
아빠때문에 너무 걱정이라고,
고혈압이 심해서 쓰러지셨는데도 맨날 술을 마시고 곧 죽어도 병원을 안 가려고 한다고
건강관리를 하나도 안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실망스럽다고.
그러게
나는 아픈데 치료 안 받는다고 고집피우는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까
아파서 가족들 고생시키는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신포도 증후군을 이용해보면 될까..
사실 나는 아빠가 아주 많이 아파서 불구가 되어도 옆에 있어주길 바랐다
후유증으로 걷지 못해도 항상 따듯한 아빠의 손을 잡고 싶었다
할머니처럼 말을 못하게 되어도, 오빠와 나의 자식들을 보면서 '어,,어서. 와'라고 떠듬거리며 인사해주는 할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아픈 아빠를 오랜 시간 간병하다 지쳐서, 부고 소식에 슬픔보단 후련함을 느끼고 싶었다.
병든 부모를 모시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고 오히려 잘 됐다고
그날 쓰러진 아빠 옆에 있었어도 심폐소생술로 살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날 위로했다
하지만 신포도 증후군은 내 마음을 조금도 편안하게 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아빠가 없는 삶은 아빠가 있는 삶보다 슬펐기 때문에.
신포도 증후군이 통하려면 우리 아빠는 다정한 사람이면 안 됐다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면 안 됐다
일본어 시험을 준비하는 내가 기특하다며 공부하는 모습을 30장씩 찍는 사람이면 안 됐다
그런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내 인생에서 너무 큰 손해이기 때문에
신포도 증후군은 날 더 비참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