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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Jun 20. 2024

부모없이 사는 것도 장점이 있을 듯

자기연민에서 벗어나서 어른이 되자



어떤 날은 또 괜찮았다가

어떤 날은 사무치게 그리워서 하루종일 울다가


어른인 척 했다가, 아빠한테 사랑받던 7살 아이로 돌아갔다가

매일매일이 그렇게 반복되고 


쉽게, 그리고 아주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수많은 이별 노래가 들릴 때 헤어진 애인이 떠오르기보단 아빠가 떠오른다.




사실 24년을 함께 산 것만으로 참 감사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시간이다.


아빠는 심부전이라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야했지만,

그래도 오빠와 나를 건강하게 낳고 키워주셨다. (아직까지 우리에게 심장병 유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아내와 자식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사랑이 너무 크고 좋았어서 이렇게 아직까지 그리워서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그 사랑 덕에 풍진 세상을 버텨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컸다.


법륜 스님 말씀 몇 번 듣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얼마나 아프셨어요 지금까지 절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생에 또 만나요"


훨훨 아빠를 보내줬다가


다시 질질 짜면서 붙잡기도 한다


"조금만 더 우리 옆에 있어주세요. 아빠가 떠나고 죽음처럼 사는 엄마한테 마지막 인사라도 해주고 가세요."


대학 졸업식 다음 날, 황망하게 떠난 아빠.

제주도에서 급하게 올라와 미망인 호칭을 들으며 장례를 치뤄야했던 엄마.


취업을 준비하는 때이기도 했고,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급하게 여기저기 아무 회사나 닥치는대로 지원했던 것 같다.


면접 때 아버지는 뭐하시냐고, 아버지는 몇년생이시냐고 너무나 당연하게 아버지가 있을 거라는 전제로 물어보는 질문들이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


저도 한 달전까지는 아버지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안 계십니다.


그리고 응당 있어야 할 가족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일인지 체감하게 되었다. 



부모가 있느냐 없느냐는

50:50 인데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있다가 없으니까 왜 이렇게 쓸쓸하고 가슴이 아픈지..



한 달전까지 아빠가 있던 화목한 가정에서 발랄하게 큰 mz세대 취급받던 내가

갑자기 홀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하는 동정 받는 사회초년생이 되어버린 게 무척이나 서럽게 다가왔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아빠가 없다는 것 혹은 부모가 없다는 것은


가능하면 인생에서 늦게 겪는 게 좋은 일이지만

겪었다고 해서 자기연민에 빠져 슬퍼하고만 있을 대재앙은 아닌 것 같다.




부모님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있으면 좋은 거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길 바랐지만 뒷면이 나온 것뿐이다.


동전이 이렇게 나온다면 지폐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아빠를 능가할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


내 옆에 남은 엄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




아빠가 떠나고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친척들도, 

이제 홀어머니를 모셔야하니 넌 열심히 일해야해, 라고 가스라이팅하던 회사도


날 동정하는,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님은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한편으로 안도하는 그 표정들이 참 싫었다.


그런데 남이 날 동정하는 건 싫으면서 나 자신조차도 나를 연민하고 있었다니


자기연민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오늘은 또 이렇게 다시 일어서보겠다는 의지로 강한 척하다가

내일 또 '아버지는 딸이 자취한다고 하는데 안 서운해 하세요?' 라는 질문에 무너질지 모르지만,


자꾸 아버지 갖다 드리라고 홍삼 진액을 나눠주시는 회사 직원분의 호의에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날 연민하지 않기로 했다


 

홍삼 진액 내가 먹으면 된다

결혼식에 손 잡고 걸어갈 아빠가 안 계시면 혼자 탭댄스 추면서 입장해보련다



트위터에서 보고 인상깊어서 캡쳐했던 문구인데


아빠는 나에게 정말 큰 진통제였다


아빠가 없으니 너무 아플 때가 있지만, 

아프면 아픈대로 나아지면 나아지는대로 


그렇게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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