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정말 다시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다.
평소처럼 집에 왔는데, 아빠는 분명 자고 있었는데
아니,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침 인사 대신 구급차를 불러야 했던 그날은 가족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구급차도 왔고 경찰차도 왔지만 정작 와야 하는 가족들은 없었다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서 엄마와 오빠에게 아빠가 떠났다는 걸 전하지 못했다
다른 가족분들은요? 경찰의 질문에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고 단축키 2,3번을 눌렀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1번이다)
제주도에 있던 엄마는 급하게 당일 비행기를 예약했고, 야근을 마치고 주말 낮잠을 자고 있던 오빠는 잠옷 바람으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빠의 심장이 사실은 30%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던 큰 아빠는 왜 하필 오늘이냐는듯,
두 눈을 감고 아파트 복도에서 거의 반쯤 기절해 있었다.
한 사람이 죽으면 이렇게 일사천리로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지 몰랐다.
알리가 없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자체를 처음 겪어봤다. 그 처음이 아버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광화문 점심시간에 직장인들 커피 주문 받듯, 아주 무미건조하게, 그리고 빠르게 장례식장은 접수를 받았다.
고인의 사진/ 생년월일 / 가족관계 / 사망진단서를 요청하고
화환과 삼베옷, 식사는 어떻게 구성할 건지 가격표를 보여주는 장례업체를 보며 정말 아빠가 이렇게 가는 건가? 현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빠와 24년을 함께 했지만, 아빠라는 한 사람은 57년을 살았다.
57년 동안 한 사람이 만들어낸 수많은 우주가 있을텐데
그 인생의 마무리가 400만원 지불하고 3일 세레머니로 끝나도 되는건가, 지독함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나는 아빠를 화장하는 게 싫었다.
기적처럼, 만화처럼 시신을 보관하고 있다보면 언젠가 다시 부활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망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에, 진짜 만약이지만 과학기술을 발전해서
미친 천재 과학자가 개발한 화학섬유 가득한 물을 부으면 아빠가 다시 살아난다는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귀멸의 칼날 네즈코처럼 인간이 아니더라도 괴물 형태로라도 아빠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미친 망상이지만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망상에 현실도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장례절차의 순리대로 아빠는 화장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훤칠했던 우리 아빠는 체격이 커서 평균보다 화장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 들었다.
시신을 잘 보관하면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망상을 품지 말라고,
너희 아빠는 아파서 떠나는 게 맞다고, 가족들을 위해서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아프다 떠났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이 불은 활활 타올랐다.
정말 야속하게도 활활 탔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빠가 담긴 유골함은 아주 따듯했다.
살면서 가장 아프게 울었던 날이었다.
말 그대로 아팠다. 너무 울어서 눈이 쓰라리고 코가 헐고 입이 찢어졌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심장도 콕콕 아파왔다.
아빠가 집에서 혼자 심장을 부여잡다 턱- 하고 겪었을 심장마비의 그 아픔의 반도 안 될텐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너무 아파서 이참에 1+1으로 내 장례식도 할인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사할 만큼 아프진 않았는지 자본주의로 범벅된 장례식을 잘 치러냈고, 시간이 흘렀다.
한 가지 문제만 남긴 채,
병원에 있는 할아버지가 문병을 오지 않는 셋째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 빼면 시간은 잘 흘러갔다.
할아버지는 아직 아빠의 죽음을 모른다.
그게 내 심장을 또 한 번 콕콕 찌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