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지 Jun 26. 2024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산다

그럼에도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어제 이모한테 연락이 왔다


갑자기 며느리가 택배 하나 보냈다며 확인해보시라는 연락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옆집 아저씨가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급하게 구급차를 부르고 응급처치를 했는데 정말 1분만 늦었어도 끝이라고 했다.


깨어난 옆집 아저씨는 


갑자기 너무 어지럽고 심장이 빨리 뛰어서 이러다 죽겠구나..

집에 아무도 없고 시골이라 이웃도 3명뿐인데 발견 안 되면 죽겠다..


그런 생각에 일단 뛰쳐나와야겠다고 필사적으로 집을 나왔고, 이모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에 '아 살았다' 하고 쓰러졌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참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왜 우리 아빠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끙끙 앓다가 쓰러졌을까.. 갑자기 먹먹해졌다.


하다 못해 지하 주차장에서 쓰러지지.. 

엘레베이터 안에서라도 쓰러지지..


아무도 없는 집이 아닌, 

밖에서 쓰러져서 누구에게 빨리 발견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한테도 이모의 옆집 아저씨처럼 기적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에 씁쓸해졌다.


누구나 병들고 죽는데도

나는 아니길, 내 가족은 아니길 바란다


우리나라에 있었던 수많은 죽음들 

애석한 죽음들

기적을 바랐던 죽음들


기적은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어나길 바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응답하라 1994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다룬 에피소드가 문득 떠올랐는데, 이런 대사가 있었다.



결국 절박함의 순간에 누구나 기적을 기도하고 기다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절박한 그 모든 순간들의 희미한 희망들이 깃들 수 있도록 기적은 있어야만 한다


아빠는 정말 딱 하루, 가족들이 모두 없는 날

쓰러지고 말았다.


절대 가족들에게 간병을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아픈 아빠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아빠가 기적을 거부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모두 기적을 바랐다


특히 나는 더욱


아빠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아파도 살아나주길 바랐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로또가 당첨되지 않았다고 일생을 포기할 수 없듯이


나는 또 오늘을 열심히 살아봐야지


그리고 아빠가 있는 천국에 가서 너무 보고싶었다고

나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고 말할 것이다


아빠가 떠나고 

엄마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급하게 취업했다가 중소기업의 횡폐에 울기도 했고, 

월세보다 수리 비용이 더 드는 반지하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고, 

브런치에 글도 쓰는 작가가 되었다고,

 

조잘조잘 마주 앉아 떠들고 싶다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반지하로 내려오니 자괴감이

편하게 대학 다니다가 힘들게 직장 다니려니 절망감이 밀려왔던 근 3년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다는 게 심적으로 인간을 망가트리기 쉬운 구조이지만,

지하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보겠다고 


아빠의 사진을 보면서 결심했다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기적처럼 행복해지길





이전 08화 가족 중에 심부전 환자가 있다면 심장 멈추기 전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