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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지 Jun 26. 2024

죽음 후에 오는 것들

아빠가 떠나고 배운 것들

어학 자격증 시험 장소가 집에서 꽤 멀다는 이유로 친구 집에서 잤던 날,

엄마와 오빠가 일 때문에 출장을 가있던 날


아빠는 재택 강의를 마치고 집에서 바로 쓰러지셨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셨는데, 

장례를 마치고 아빠가 썼던 노트북을 뒤늦게 켜보니 

강의를 끝내고 갑자기 헉! 하는 표정을 짓는 모습을 끝으로 녹화 리코딩이 멈춰져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수업 중간중간에 식은 땀을 닦아가며 심장을 부여잡는 모습이 녹화됐는데

통증을 꾹 참고 수업을 마치자마자 쓰러진 것이다.


강의을 제대로 마치고 싶다는 책임감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을 텐데도 꾹 참고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빠의 그 열정


심장마비 전조 증상을 검색해보면, 심장을 쥐어짜는 통증이 온다는데

그걸 참고 강의를 끝마치셨다니.. 

강의를 겨우 끝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심장마비가 진행되고,

가족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혼자 쓰러져야 했던 아빠  


뒤늦게 집에 왔을 땐 사후경직이 한창 진행된 후라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고

바닥은 차가웠다. 그리고 아빠의 몸은 더 차가웠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그 날

하필 딱 하루인데.. 시험보고 온다고 집에 없던 딱 그날에 쓰러질 줄이야


왜 아빠처럼 착하고 열심히 산 사람이 일찍 떠나야하는지

왜 좋은 곳 취업해보겠다고 자격증 시험보러 간 나한테 이런 평생의 후회를 안겨주는지


안타까워하면서도 내 일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친척들과 친구들

물론 그들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갑작스러운 동정을 견뎌내기 참 힘들었던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목했던 4인 가정에서 아빠를 살리지 못한 콩가루 집안이 된 거 같고,


넌 이제 아빠가 없으니 더 열심히 해라


사회에서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아빠의 부재는 나를 평가하는데 마이너스 요소로 책정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물론 3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말들에 휩쓸리지 않지만,



당시에 무엇보다 힘든 점은 할아버지에게 아빠의 죽음을 숨겨야 했다는 것이다.


3년 전 할아버지는 코로나로 입원해 계셨고, 병원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다.

큰 아빠는 위독한 상태에서 자녀상을 접하면 쓰러지신다며 아빠의 사망 소식을 숨기자고 하셨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기적이 할아버지에겐 일어났고 할아버지는 퇴원을 하게 되셨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오던 아들이 퇴원하는 날에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으니 얼마나 의아했을까


해외에 출장 강의를 갔다고 어설프게 둘러대야만 했던 1년이었다

자그마치 1년을 숨겼다


설에도 추석에도 찾아오지 않는 아들이 미워질만도 할텐데 죽음보다는 무관심이 낫다고 생각하신걸까



결국 울면서 할아버지에게 사실을 말씀드렸다.


할아버지는 덤덤하게 들으시며 어쩌면 예상하고 있었다, 1년 내내 연락 한 번 없는게 말이 안 된다며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너도 속이느라 얼마나 맘고생 했겠냐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셨다.


어떻게 1년을 속일 수 있냐고 화를 내시긴커녕 내 걱정부터 해주셨다. 

그리고 피곤하다며 방에 누워있겠다고 하시고는 소리도 못 내고 눈물을 감추던 할아버지를 보았다.


다 젖어버린 베개와 

입술을 하도 꽉 다물고 울어서인지 

이빨 자국이 선명해진 할아버지의 입술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생전에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을 주고 간 것 이상으로,

아빠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갔다



1. 엄마의 인상이 조금 바뀌었다

뚜렷한 체중 변화는 없지만 어딘가 야윈 느낌이 든다

하지만 꾸준한 운동과 멈추지 않는 경제활동을 통해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


2.  남은 가족들의 결속력이 강화됐다

서로를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아빠를 기억하는 모든 일가 친척들과 슬픔을 나누니 더 끈끈해진 듯 하다.


3. 유한한 시간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한정된 젊음과 건강,

그리고 오늘도 무탈했음에 크나큰 감사를 표하게 되었다

배터리가 빨리 닳으면 저전력 모드를 켜듯, 바쁘면 멈춰도 된다는 걸 배웠다.


4. '중꺽마'를 넘어서 '중죽마'를 배웠다

꺾이는 수준이 아니라, 죽어도 계속 살아가는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전부였지만, 나의 전부가 없어도 나는 일단 계속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훗날 아빠를 만나게 될 때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5.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쉽게 내뱉었던 '죽고싶다', '자살해야 될 듯' 따위의 말이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죽음을 쉽게 내뱉지도, 무겁게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고 그냥 하나의 계절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름이 오면 서핑을 즐기고, 겨울이 오면 스키를 즐기듯

살아있으면 살아있음을 만끽하고, 죽음이 오면 편안함을 만끽할 것이다.




죄책감과 후회로 마음이 문드러졌던 3년이었다.

해탈한 척 하지만, 살아가면서 계속 울컥하겠지.



오늘 이런 글을 보았다


물컵에 차있는 물이 더러워졌다면 불순물을 걸러내는데 힘 빼지말고 깨끗한 물을 계속 채워넣으라고


참 와닿는 표현이었다


아빠가 너무 그리워서 신포도 권법도 써보고, 계속 좋았던 과거만 떠올리며 울다 잠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다. 


남은 가족들과 앞으로 즐거운 추억을 더 만들고

새로 만나게 될 친구와 가족들을 통해 좋은 시간들로 내 인생을 채워나가면 된다


아빠는 내가 행복하게 살길 원했기 때문에

병원비로 고생하지 말라고, 20대를 아빠 간병 하는데 쓰지 말아달라고

그런 바람때문에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떠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쓸쓸하고 희생적인 죽음마저도 우리 아빠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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