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의 다정한 이웃
처음 책방 자리를 계약했을 때, 우리 옆 집은 비어있었습니다. 사실 코너 자리가 탐이나 눈독 들였던 곳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공간이 넓기도 했고, 주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권리금이며, 월세가 훨씬 더 비쌌기에 빠르게 포기했더랬지요.
책방에 간판이 생길 무렵, 옆집에도 아이보리빛 어닝이 생기더니 뚝딱뚝딱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기왕이면 예쁜 카페가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고소한 빵냄새 가득한 빵가게도 좋겠어. 책방에 어울리는 따뜻한 인테리어면 더 좋겠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 공사, 금방 실체를 드러낸 우리의 옆집.
그 곳은, 예쁜 카페도 고소한 빵냄새의 빵가게도 아닌, 김치찜과 생선구이 가게였습니다. 생선구이라니!! 책방에 생선구이라니!! 최악도 이런 최악이 없었습니다. 책에 냄새 배는거 아닐까? 김치찜은 또 뭔데. 심지어 나는 김치를 싫어합니다. 음식점인것도 싫은데 메뉴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장님은, 살가운 사람이었습니다. 여자친구와 함께 우리 책방을 찾아, 책도 구매해 주셨습니다. 프랑스 원서 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텐데, 그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어느날 퇴근길, 고마운 마음에 주문한 김치찜은 김치를 싫어하는 나에게 충격적으로 맛있었습니다. 서비스로 주신 계란후라이가 오래 따뜻했어요.
우리는 참 좋은 이웃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책방에 갈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쥐어주시고, 우리에게도 종종 음료수를 나누어 주시는 황산옥 사장님. 낡은 우리 건물이 재개발 이슈로 들썩거릴 때에도 자주 책방에 들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자영업자들에게, 젊지만 경험 많은 사장님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금토일만 여는 우리는 택배 한 건을 보내기 위해 책방에서 택배 아저씨를 내내 기다리기가 부담스러웠는데, 흔쾌히 우리의 택배도 맡아주셨습니다.
작년 와인파티에는 직접 샐러드를 만들어 협찬해 주셨습니다. 사장님도 어서와서 함께 와인 한잔 하자고 했지만, 언제나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사장님이기에, 마감을 마치고 12시가 넘은 시간에서야,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적한 주택가에 상가가 별로 없는 골목인데, 갈 때마다 다정하게 인사 나눌 수 있는 옆집이 있다니,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이 작은 책방에서, 여러 사람의 온기가 오갈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합니다.
음식에 유독 민감한 남편이, 김치찜이 먹고싶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배달앱을 뒤적거리더니, 거기 만한 곳이 없다며 투덜거려요. 거기, 어디? 책방 옆에 거기.
쓸데없이 사업자등록을 전부 열어 보았더니, 어플에 있는 모든 김치찜 집들이 족발이나 냉면 같은 다른 메뉴들을 등록하고 있더랍니다. 황산옥은 안그래? 어 거긴 안그래 김치찜으로 등록되어있어. 까칠한 남편에게도 인정받은, 성실한 젊은 사장님. 역시, 열심히 한 것은 남는가 봅니다.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황산옥 사장님께 김치찜을 포장해서 퇴근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다정한 사장님은, 옆집 서비스로 계란 후라이와 계란말이를 덤으로 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