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공간이 사람을 드러내는 방식
나는 운동을 하며 알게 됐다. 사람이 조심스러워지는 순간은 극한상황이 아니라 상대가 더 이상 만만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라는 걸.
자발적으로 모여 음악에 맞춰 스트레칭과 동작을 하는 운동 크루에 들어갔다. 평균 연령은 아마 60대 중반쯤일 것이다. 나는 꽤 젊은 편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분들의 에너지와 근력은 나이로 설명할 수 없다.
나는 처음이었지만 꽤 열심히 했다. 예전에 하던 경험도 있고 대충은 못하는 성격이다. 동작에는 힘이 실렸고 자연스럽게 칭찬이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묘하게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같은 공간, 같은 활동인데 태도는 전혀 같지 않았다.
동작이 엉망이어도 연세가 많고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같은 크루인데도 덩치가 작고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비키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칭찬은 이어지지만 자리를 비키라는 말 같은 직접적인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체격과 에너지 그리고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계산한다. 이 말을 해도 괜찮은지, 이 말이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지
그래서 함부로 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저 사람은 무섭다’고 판단해서라기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는 쪽에 가깝다.
운동을 하다 문득 우연히 알게 된 중국드라마 이야기가 떠올랐다. 궁궐이라는 조직 안에서 사람은 위치와 색깔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선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였다. 조직이든, 궁궐이든, 운동 크루든 사람이 모인 공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색깔이 분명하면 공격과 방어의 규칙이 생기고,
중도를 지키면 어느 편인지 알 수 없어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경계의 대상이 된다.
힘이 느껴지면 말의 톤이 달라지고,
약해 보이면 규칙은 슬그머니 느슨해진다.
그래서 “중도를 지켜라”는 말과 “중간만 해라”는 말은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르다.
하나는 태도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생존의 요령이다.
나는 덩치가 있고 과거에 운동을 했을 것 같은 체격에 동작에도 힘이 실려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에게 직접적인 요구를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상대가 나에게 쉽게 하지 못할 거라고 느끼는 순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조심스러워지는 걸까. 사람이 인간적이어서일까 아니면 관계의 힘을 먼저 느끼기 때문일까.
그리고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중도를 지키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조심하게 되는 쪽에 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