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으로 빨리 흘렀어. 나는 어느덧 유치원을 졸업할 나이가 됐지. 일곱 살. 참으로 어리기 그지없는 나이지만 당시의 나는 꽤나 성숙했던 것 같아. 내 기억의 미화였을까, 아니면 친구보다 노인들과 더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서였을까. 나는 내 또래 아이들에게선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어. 그래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 우리 집 큰방에 펴진 나무로 된 상. 그 상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담긴 잔이 6개인가 있었어. 그리고 그 숫자만큼 있는 노인들. 나는 그들과 대화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제는 무슨 대화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추억의 조각. 그런 그때의 기억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나더라. 그것은 들은 이야기, 우리 어머니가 해주셨던 이야기. 우리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고 있을 무렵, 옆방에 동생을 재우고 온 어머니가 내 옆에 앉아 말문을 틀었지. “방금 옆방에 애 재우다가 사진을 하나 봤는데, 그 할머니는 누구셔?” 그 질문에 우리 아버지가 답하길, 몇십 년도 더 전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라고 하더라. 그러자 어머니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내 무언가 곰곰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바뀌었어.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모두가 말없이 어머니의 입만을 주목하고 있던 그때. 돌연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지며 그 이야기가 시작됐지. 내가 잊을 수 없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서두는 평범하기 그지없었어. “제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꿈에 나왔던 할머니가 한분 계셨어요.” 그 뒤로 이어진 이야기에 어린 나는 잘 몰랐지만 다른 노인들의 표정엔 놀라움과 그리움이 가득했던 걸로 기억해. “그 할머니가 남편 이름을 부르며 말하길 잘 부탁한다고, 잘 보살펴 주라고, 고맙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이에 어머니는 놀라 몇 번이고 고개를 저어버리고 말았다더라. 하지만 그 꿈은 그날 하루가 끝이 아니었데. 항상 같은 배경에서 등장하는 같은 차림의 할머니. 그분은 늘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더라. “철수를 부탁할게 잘 보살펴 줄 수 있지…?” 그런 그녀의 표정에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미련이 보였다고 해. 그리고 그런 일이 보름쯤 반복됐다고 하셨나? 마침내 어머니는 그동안 기억하지 못했던 반복된 꿈속의 일들을 한 번에 떠올리셨대. 그리고 답하길. 알았다고, 알았으니 맡겨만 달라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고 해. 그렇게 어머니의 말이 끝나니 그 할머니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 말하시며 손을 잡으시더래. 그 뒤로 그 할머니가 꿈에 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지냈다 하고. 하지만 그 꿈을 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날 품게 되는 바람에 아버지께 묻지는 못했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번에 아버지가 장롱을 새로 들이면서 꺼내놓은 사진을 보니 그때 꿈속의 그 할머니와 똑같은 모습과 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해. 흐릿했던 기억의 갈피를 잡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버지가 작게 웃으며 말하시더라. “마지막까지 걱정을 끼쳐 드렸구나.” 그런 그의 표정엔 묘한 미소와 함께 씁쓸함이 겹쳐 보였는데, 그때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입을 여셨던 걸로 기억해. “그래 네 어미답네.” “좀 일찍 결혼하지 그랬느냐.” 등등. 얼핏 듣기에 모진 말처럼 들리지만 아마 나쁜 의도는 없었을 거야. 그때의 나는 이 이야기 역시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 그래. 분명 그랬던 거 같아. 그렇기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니 아버지가 이리 말하셨어. “너는 엄마한테 잘해라. 엄마 말은 꼭 듣고.” 그런 그의 표정엔 미련과 함께 무언가 의지가 보이더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물론 그걸 알아차리는 건 훨씬 뒤의 이야기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정말이지 밝고, 활기차며 당돌하게 대답했었지. “응!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