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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태소 Jan 05. 2024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랑에 대하여 2 : 최은영 <밝은 밤>을 읽고

‘밝은 밤’은 주인공 지연이 남편과의 이혼 후, 할머니가 살던 희령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마을에서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 지연은 할머니의 집을 오가며 할머니의 증조부모에서부터 시작되는 긴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의 엄마인 지연의 증조모는 어릴 때 백정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살았지만 천주교를 믿던 증조부를 만나게 되면서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그들의 가족과 주변인물들에게 일어난 만남과 이별 등을 다룬다. 현재의 지연-할머니-엄마를 둘러싼 갈등과 봉합, 할머니의 옛 친구인 희자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흘러가고, 동시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까지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앉아있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건 마지막 희자의 편지였다. 책 안에서 인물들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는다. 새비 아저씨(희자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시절 돈을 벌러 일본에 갔을 때도, 휴전 후 가족을 찾기 위해 희령으로 온 할머니, 증조모가 대구에 있는 새비 아주머니, 희자, 명숙 할머니와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희자와 실패해버린 결혼생활의 아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연명해가던 할머니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도 항상 편지가 등장했다. 이 소설에서 편지야말로 사랑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희자는 대학 졸업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후 할머니는 희자를 만나지도 소식을 듣지도 못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희자를 찾아낸 지연은 희자의 메일주소를 찾아내 다시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그들은 수십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다시 마주하게 된다.


희자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지나간 인연은 그렇게 되는거야’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함께 만나 행복했던 시간은 각자의 마음 속에 남아 사랑이 되었나보다. 희자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하던 그 시간을 모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에게서 어느날 문득 연락이 온다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잘 익어가고 있던 그때의 시간들을 떠올려봐야겠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날아온 몇 글자 단어 안에는 지난 시간 속 우리의 행복했던 시간, 사랑이 담겨 있다.




by.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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