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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폐 Jun 20. 2023

날궂이 하는 날

병상 일기 4

날궂이 하는 날이다.


쨍쨍- 하늘이 맑은 데도 할머니는,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어머니도 뉴스로 알려주는 일기예보가 아닌, 몸으로 느끼는 날씨 예보를 하셨다.


"고베이(무릎)가 쑤셔오는 걸 보니 비가 올라나 보네, 아구구구! 비설거지 해야겄어."


어릴 때는 도무지 이해 못 하겠던 말들을 이제는 알겠다.


입원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흐리다가 한낮으로 접어들기 전부터 소슬비가 나리는데 시원찮은 몸뚱이 곳곳의 통증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하게 줄넘기와 널뛰기에 풍선 터뜨리기를 해댄다.


오전 진료를 끝내고 가는 곳은 환자들이 담당의사의 처방을 받아 가는 곳 물리치료실 실장님은, "요즘은 우리나라 일기예보가 너무 잘 맞아요." 하면서 허리와 발목에 찜질팩을 얹어준다.

아마도 먼저 다녀간 다른 환자, 곧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신 모양이다.


진료 차트에 특별한 재활 처방이 없으면 "어디가 아프세요?" 물음과 함께 찜질팩과 저주파 치료를 기본으로 하는 물리치료실에는 연륜이 많은 실장님 말고도 물리치료사와 실습 또는 알바를 하는 재활학과 학생들이 환자들의 치료를 담당하는데, 의사도 마찬가지지만 물리치료사도 나이가 젊고 건강하면 통증과 통증 부위를 이론으로만 알기에 환자에게 치료기를 붙였다 떼는 손길이 그리 부드럽지 않다.

환자들은 거의 작은 울림에도 아프다 느끼기에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다루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삐삐삐삐-- 치료를 종료합니다.'


저주파 치료가 다 끝났음을 기계 속에 설정해 놓은 소리가 알려준다. 주먹 만한 실리콘 컵 속, 물기 머금은 듯한 스펀지에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숨결이 스며있지 않은 소리가 나자마자 방염커튼이 젖혀진다.

건장한 물리치료사가 들어온다.

살갗을 움켜잡았다가 미처 떨어지지 못한 저주파 실리콘 컵 줄을 잡아당긴다.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상쾌하지도 않은 느낌은 마치, 치료사가 한데 모아 움켜잡은 실리콘 컵 줄들에 움켜잡혔던 살갗까지 같이 끌려가 매달려지는 듯하다.


그게 싫어 떼어내고 있으면, "잘못 떼면 고장 나니까 가만히 계세요~"

말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으로써 강하게 억누르는 말투는 아니지만 뭔가 야단맞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지만, '아파 본 적 없으니 몰라서 그러는 것이리라.' 눙치고 다.


그러나 실장 님은 나이와 연륜이 있어서인지 아픈 곳을 찬찬히 살핀 뒤 부드럽게 붙인다. 어깨에 찜질을 해야 할 때면, (다른 이처럼 목덜미 쪽에 그냥 툭 놓는 게 아니라) 먼저 큰 수건을 어깨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찜질팩을 놓은 뒤 수건과 함께 그 딱딱한 것을 힘껏 구부려 어깨를 감싸듯 해서는 반대쪽 어깨 밑으로 말아 넣고는,

"불편하면 부르세요~" 하고는 나가서 커튼을 촘촘 여무린다. 

저주파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를 듣고 들어와서도 잠깐 기다린 뒤 살갗에서 저절로 떨어지면 모두어 정리를 하고는, "천천히 일어나세요~" 하고는 나가기 전 환자의 신발을 가지런히 모두어 신기 좋게 방향을 틀어놓는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하신다.




여기저기 아파서 힘들어도 집에서 내 옷을 입고 일상을 보낼 때는 스스로 환자라는 생각을 1도 안 하고 남들로부터도 환자라는 말을 들을 일이 1도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 주는, 남녀 구분도 없고 크기도 선택의 여지없이 대중소(大中小)만 있고 옷맵시라고는 1도 없는 환자복을 입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환자'로 불린다.


환자로 불리고 환자 취급을 받아서인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통증이 널뛰기하는 날궂이도 더 세게 하는데 배려받지 못하는 듯한 감정이 일어나면 당장이라도 퇴원을 하고 싶어 진다.


이 또한 날궂이인 거겠지?

싱그러운 자작나무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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