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잠이 보약이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달리다 보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수면입니다. 대학 입시, 직장 생활, 각종 프로젝트의 마감일이 가까워질 때면 당연한 듯 잠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입니다. 장거리에서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쉬어가며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잠을 지나치게 줄이는 것은 어쩌면 미래의 나에게 빚을 지는 행동일지도 모릅니다.
6시간만 자도 100% 효율이 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잠이 부족하면 몸과 정신 모두에서 피로의 신호가 켜집니다. 수면은 단순히 피로를 해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소화불량, 두통 같은 신체적 증상뿐 아니라 우울감, 무기력증 같은 정신적 증상까지 동반되기 쉽습니다.
실제로 수면 전문의로서 환자를 보며 이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의학적으로 수면은 우울증, 불안 장애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충분히 자지 못할 때 우리 뇌는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일상에서 작은 일에도 쉽게 지치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런 피로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무기력감이 찾아오고, 큰 목표조차 이루기 힘든 상태로 나를 몰아가게 됩니다.
저는 잠이 많은 편입니다. 학창 시절 독서실에 가서 30분 정도 책상에 엎드려 자고 나서야 비로소 공부가 잘 됐습니다. 지금도 졸릴 때면 30분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이런 습관 덕분에 제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딸아이에게는 "아빠는 잠만보야?"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이렇게 잠으로 체력을 보충한 뒤에는 훨씬 더 즐겁게 딸과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반면 제 아내는 저와 달리 밤잠을 충분히 자고 낮잠을 안 자는 스타일입니다. 낮잠이 없으니 하루를 온전히 쓰는 것 같고, 효율이 더 높다고 말하죠. 이렇듯 사람마다 몸에 맞는 수면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활과 체질에 맞는 최적의 수면 습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올바른 호흡과 일정한 보폭으로 페이스를 유지해야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것처럼, 내게 맞는 수면 습관을 찾는 것은 인생이라는 장거리 여정을 지탱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종종 시간을 쪼개어 다른 일을 하려다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수면을 아끼며 하루를 길게 쓰려는 시도가 가장 큰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충분한 잠을 자는 것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나에게 주는 행복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쉴 때 비로소 재충전되고, 마음 또한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잠은 줄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체력과 행복을 위한 필수 투자로 생각해보세요. 내가 내일도 건강한 마음으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중요한 결정을 신중히 내리기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는 얼굴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잠을 줄이고 달리기보다는, 나를 위한 수면을 충분히 즐기며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나답게 완주해보는 것이 진정한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