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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약이겠지요!

함부로 말하지 마라

by 죠니야

50년 전 히트한 유행가 가사다.

아무리 슬프고 아픈 일이 있더라도 계속 슬퍼하면서 아파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빨리 잊고 씩씩하게 살라는 것인데, 최고로 잘 잊게 만드는 게 세월이니 ‘세월이 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타인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 “ 세월이 약이라는 데 이제 다 지난 일이니 잊어! ” 이 게 말이 되나? 비슷한 말이 또 있다. “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쪼잔하게 그래, 0자답게 잊어! ” 정말 가해자가 할말은 아닌 것 같다. 깨진 사기그릇은 절대 원상 복구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접착제로 솜씨 있게 붙였다 해도 자국이 남는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한 번 상처를 받으면 치유됐다 하더라도 흉터는 남는다. 함부로 ‘ 세월이 약이겠지요! ’란 말 하지 마라.

50년 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톱 여배우 부부가 북한 공작원에 의하여 납치될 뻔한 사건이 있었다. 이때 북한 공작원의 사주를 받아 이 부부를 적성 국가 유고슬라비아까지 유인했던 박00씨가 있다. 박00씨는 당시 세계적인 화가 고 이00 화백의 부인으로 피아니스트 부부가 만리타향에서 어머니처럼 모시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 박00씨가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식 같은 사람들을 납치해 북으로 보내려 한 건지 지금까지도 박00씨가 밝히지 않으니, 아무도 모른다. 이후 박00씨와 피아니스트 부부는 원수가 됐고 박00씨는 간첩 혐의를 받아 한동안 고국에 오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남북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또 관계된 사람들은 다 세상을 떴다. 이제는 박00씨와 피아니스트 둘만 살아있다. 둘 다 자유롭게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산다. 조사와 처벌은 둘째치고 사건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세월이 약이니까, 100살이 다돼 죽음만을 기다리는 박00씨니까, 50여년전 행동은 잊어야 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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