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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39>

요술공주 한덕수와 여의도 금붕어 떼 ⑥

by 이진구

<…우리는 우리를 이끄는 지도자와 그 집단에 대해 야박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힘들어 울어야 국민이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건… 정책이나 전문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사회지도층이 국민보다 힘들지 않고 편하게 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김문수 후보는 사실상 당 대선후보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몰아가려는 당 지도부의 단일화에 저항했고, 숱한 파란 끝에 당 지도부는(당원의 뜻이라고 핑계를 대기는 했다) 5월 10일 새벽 2시경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김문수 대선후보의 대선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그리고 동시에 당 대선후보자 등록신청 공고가 홈페이지에 떴다.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선거 후보자 등록 신청 공고>

당헌 제74조의 2 및 대통령후보자 선출 규정 제26조에 의거하여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선거 후보자 등록 신청일을 아래와 같이 공고합니다.

1. 등록신청 기간

○ 2025. 5.10 03:00~04:00.

2. 제출 서류

①후보자 등록 신청서 ②이력서 …(중략)… ㉜후보자 인적 사항 요약자료

3. 신청서 교부 및 접수 장소

○접수 국회 본관 228호(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


아… 새벽 3시에, 딱 한 시간 동안 대선후보 등록 신청을 받은 거다. 그 옛날 자유당 정권이 이 방법을 알았다면, 서울대 수학과 교수를 동원해 ‘사사오입’이라는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권을 동원해 총선 후보 등록 시간을 새벽에 한 시간만 받으면 되니까. 물론 자유당 후보들에게는 미리 알려줘서 선관위 앞에서 기다리도록 하고 말이다. 그래도 1954년 자유당 정권은 말도 안 되는 ‘논리’라도 끌어와 ‘강변’했다. 그런데 70년도 더 지난 2025년 국민의힘에서는 그런 것도 없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새벽 3시 반경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유일한 당 대선후보로 등록했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전 당원 찬반 투표를 거쳐 11일 전국위원회에서 한 전 총리를 대선후보로 확정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예상과 달리 당원들의 반발로 한 전 총리를 대선후보로 옹립하려는 거사는 무산됐다.


이런 무지막지한 과정은 아마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3·15부정선거에 버금가지 않나 싶다. 국민의힘 지도부야 워낙 오래 정치판에서 썩었으니 그렇다 해도(사실 그럴 수는 없지만), 나는 한 전 총리가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과정을 순순히, 아니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응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람이 일말의 양심이나 상식, 선이란 게 있으면, 더욱이 한 나라의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지내고 서울대, 하버드대를 나온 최고의 엘리트라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새벽 3시에 자신만 등록할 수 있는 공고를 보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한 전 총리와 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 및 국회의원, 또 여기에 동조해 실무를 진행한 당직자 등을 지켜보면서 솔직히 구한말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과 뭐가 다른지 나는 모르겠다. 이런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구한말에 태어났다고 다른 행동을 했을까?


그리고 그는 선거운동 기간이 끝날 때까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돕기 위한 선거운동에 나오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자님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저부터 내일 아침 일찍 가까운 투표소에 가려 합니다”라고 사전투표 공지를 한 게 전부다. 그나마 사전투표 시간과 장소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멈출 위기에 빠져있다고, 그 절박함 때문에 출마했다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설사 자신이 후보가 되지 못했더라도 속한 당의 승리를 위해 뛰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입에 달고 다니던 ‘누란(累卵)의 대한민국’은 대선후보가 되지 못한 순간 사라졌단 말인가?


1905년 11월 30일 민영환이 을사늑약을 통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그는 유서에서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라고 말했다. 그는 대한제국에서 여러 요직을 거쳤지만, 정작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체결 당시에는 친일파 눈 밖에나 밀려난 상태였다. 그런 그가 위정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목숨으로 사죄한 것이다. 적어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면 이 정도 수준은 돼야 하지 않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총리와 장관들의 모습을 보면 왠지 제2의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상황이 벌어져도 가만히 앉아 있을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계엄령을 대통령이 선포하려고 하면 몸을 던져 대통령을 막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 국민에게 막아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계엄에도 침묵한 그들이, 목숨이 위협받는 망국의 자리에서 끽소리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만약, 끔찍하지만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한 전 총리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직을 던지고 국민과 함께 투쟁에 나섰을까, 아니면 “헤헤”했을까. 그동안의 그의 행태를 보면 전자는 아닐 것 같다.


비바람과 세월이 400년 넘게 진주 촉석루의 먼지는 씻었어도, 논개의 이름은 지우지 못했다. 그의 이름도 아름답지 못한 행적과 함께 지워지지 않고 남을 것이다. <‘요술 공주 한덕수와 여의도 금붕어 떼’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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